한미일·북중러 구도 고착화…전문가 "한반도 평화구도에 악재로"
리비아·이라크 이어 우크라까지…북, 핵개발 더 집착할 가능성
[우크라 침공] 신냉전 현실로…북핵 등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
러시아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실상 전면전을 감행함에 따라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내 '특별 군사작전'을 승인했고,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이 진행됐다.

이에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고강도 대러 제재에 착수했다.

미국이 동맹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강하게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이고, 러시아도 중국 등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국가들과 밀착할 가능성이 커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기존 미중 대립에 더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대립이 굳어질 경우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데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즉 한국과 미국 주도의 북핵 해법 마련에 중국과 러시아의 동참이 요원해지고 북한도 이 틈을 노려 중러를 뒷배 삼아 핵·미사일 개발에 더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과거 리비아와 이라크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침공당하는 사태를 목도하면서 안전보장 차원에서 핵에 더욱 집착할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철수 대가로 체제 보장을 약속받았음에도 러시아의 침공으로 그 국제적인 약속이 '휴짓조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김덕기 객원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붕괴로 독립할 때 핵탄두 1천900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6기, 전략폭격기 44대 등을 보유했던 세계 제3대 핵보유국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94년 미국·러시아 등 유엔 상임이사국의 요구로 '부다페스트 의정서'에 서명한 후 1996년까지 러시아에 모든 핵무기를 반환하면서 군사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억제력을 상실했다.

이와 관련,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미국 폭스 방송에 출연해 1994년 핵 포기 결정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면서 미국에 당시 약속했던 안전 보장을 이행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의 이런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대러 제재를 본격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 내 진영 간 대립 격화는 이미 가시화된 상태다.

대러 제재 동참 여부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던 한국도 이날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러시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대러 수출통제 등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며 동참 의사를 밝혔다.

앞으로 미국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들과 대러 압박을 강화한다면 러시아도 이에 대응하고자 중국 및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스크럼을 짤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의 최대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 아래 북핵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 입장으로서는 원치 않는 구도다.

지난달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무기력한 모습은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확인시켜줬다.

당시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소집된 지난달 20일 유엔 안보리 회의 때 미국이 요구했던 대북 제재 추가를 보류 요청하며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한 바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과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유엔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격돌로 국제사회 질서가 흔들리는 틈을 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사회의 '블랙홀'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북핵 문제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밀려나는 것도 우리로선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이 미국 등 서방세계의 관심을 끌고자 핵실험과 ICBM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조치를 해제하고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최근 세종연구소 기고 글에서 "현재 워싱턴의 시선이 온통 유럽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쏠려 있다"며 "종전선언이나 교황 방북, 대북제재 완화 등으로 마지막까지 한반도 평화구도 정착을 모색한 문재인 정부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