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은의 생명의학] '바이오헬스 거버넌스' 새 판 짜야 한다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격상했다. 앞서 2018년 한국은 이미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나라)에 세계 일곱 번째로 들어섰다. ‘강력한 과학기술의 힘’이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게 했다.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27조를 반영하듯 한국의 정부 주도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경제·산업 발전에 초점을 맞춰 개편돼 왔다. 선진국 문턱을 넘은 한국은 이제 경제 성장 중심의 추격형 과학기술 거버넌스에서 벗어나 인류 문제 해결을 위한 선도형 거버넌스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국민과 인류의 건강 문제를 다루는 바이오헬스 영역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의 정부 바이오헬스 거버넌스는 다부처 분산 구조다. 바이오헬스 정책과 사업을 특정 부처가 주도하는 대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러 부처가 각각의 정책 목표를 갖고 사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절적 구조다. 서로 다른 부처가 기초-응용-개발로 연결되는 연구개발 단계를 인위적으로 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과기정통부는 바이오헬스 기초 연구와 원천기술 개발, 산업부는 응용·개발 연구, 복지부는 임상적용 연구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절적 다부처 분산 거버넌스 구조는 바이오헬스에 대한 경제·산업 발전 중심의 정부 주도 접근 방식이 낳은 결과다. 이런 구조는 특히 바이오헬스 영역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바이오헬스 생태계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첫째, 연구개발 단계, 즉 기초·응용(중개)·개발 단계가 상호작용이 강한 수직적·수평적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다양한 혁신 주체(대학, 연구기관, 병원, 기업, 투자자 등)가 연구개발 가치사슬에 참여하고 있다. 셋째, 규제 및 정책 의존도가 높다. 분산·분절적인 정부 바이오헬스 거버넌스를 통합형 거버넌스로 바꿔야 하는 이유다. 기초 연구부터 사업화까지 연구개발 전주기를 일관된 체제로 지원하는 통합형 거버넌스를 통해 연구개발 단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서로 다른 디시플린을 지닌 혁신 주체 간의 융합을 조장해야 한다. 파편화돼 혼재해 있는 바이오헬스 연구개발 정책을 일원화해 정책 연속성과 일관성, 보건의료 정책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전략적 투자를 통해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투자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아울러 연구개발 단계별, 부처별 규제 개선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한편, 통합형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연구개발 가치사슬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기초·응용·개발 단계별 국가 연구개발비 투자의 균형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민간의 통합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 연구개발과 연구개발비 운용의 철학과 전략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2020년 정부가 집행한 전체 연구개발비의 46.8%가 개발 단계 연구에 투입됐으며, 바이오헬스 분야에서도 개발 단계 투자 비중이 36.9%에 달했다. 이는 기초 및 응용 연구에 정부 지원을 집중하고 개발은 시장에 맡기는 선진국형 투자 방식과 대조적이다. 즉,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비 투자 가운데 경제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바이오헬스 정책과 투자의 궁극적 목표를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을 넘어 국민과 인류의 건강 증진과 질병 퇴치에 둬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선진국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바이오헬스는 디지털, 기후·에너지 등과 함께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 있다. 한국의 바이오헬스는 우수한 인적 자원, 연구개발 인프라 및 생태계를 근간으로 튼튼한 기초체력을 다져왔으며 세계 선도국으로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이제 선진국 한국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 넥스트 노멀과 패러다임 전환의 격랑 속에서 바이오헬스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 오는 5월 출범하는 새 정부가 국가 바이오헬스 거버넌스의 새 판을 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