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친러 분쟁지에 '독립국' 승인→국경 넘어 러시아군 점령
[우크라 일촉즉발] 러, 크림반도 합병 수순대로 돈바스도 노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을 독립국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군 진입 명령을 내린 것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크림반도와 돈바스(루간스크·도네츠크주) 일대는 우크라이나 내 오랜 친러시아 분쟁 지역으로 꼽히는데, 8년 전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합병했던 수순이 이번 돈바스의 진행 경과와 유사하다는 점에서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에도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시 '크림공화국 합병 조약'에 서명했다.

흑해의 요충지 크림반도를 둘러싼 우여곡절의 역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83년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 처음으로 러시아 제국에 복속돼 줄곧 러시아의 통제에 있다가 옛 소련 시절인 1954년 우크라이나 공화국으로 넘어갔다.

1991년 크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수립됐고 1년 뒤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에 편입돼 크림 자치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러다 2013년 12월 우크라이나 정국이 혼란해진 틈을 타 당시 자치공화국이던 크림반도에서 독립 움직임이 고개를 들었다.

우크라이나 정권이 친러 성향에서 친서방으로 급변하면서다.

크림반도에서 친서방 정책을 선택한 정부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화됐고 이에 러시아가 2014년 2월부터 병력을 투입해 주요 시설을 점령했다.

그해 3월11일 크림공화국 자치정부가 독립을 결의하자 러시아는 이에 호응해 상원 승인을 근거로 거쳐 러시아군을 주둔시켰다.

곧이어 크림공화국 의회는 러시아 합병을 결의하고 주민투표를 했다.

이 투표에서 찬성률이 96%로 압도적으로 나왔다면서 3월 16일 독립국가를 선포했다.

이튿날인 17일 푸틴 대통령이 크림공화국의 독립국 지위를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속전속결로 크림공화국 합병조약 서명, 러시아 의회 비준을 거쳐 21일 합병에 최종 서명했다.

국제사회는 당시 치러진 주민투표가 조작됐고 국민투표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합병을 인정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는 국제법상 자신의 '영토'인 크림반도에 사실상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

2014년 3월27일 유엔 총회에서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뒤늦게 통과됐으나 실효를 발휘하지 못했다.

[우크라 일촉즉발] 러, 크림반도 합병 수순대로 돈바스도 노리나
8년이 흐른 뒤 이번엔 돈바스에서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을 멈추라며 서방과 대치했고, 이와 맞물려 돈바스에서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포격을 주고받으며 충돌하는 사이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한 것이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둘러싸고 벌이는 행보도 크림반도 때처럼 마치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일사불란한 흐름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15일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이 돈바스 독립 승인 결의안을 가결해 푸틴 대통령에게 승인을 요청했다.

푸틴 대통령은 엿새 만인 21일 대국민 담화를 열어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의 옛 영토"라고 선포하고 곧바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러고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에 평화유지 명분으로 군 진입 명령을 내렸다는 크렘린궁 발표가 나왔다.

다만 푸틴 대통령의 다음 행보를 놓고는 여러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크림반도를 단 열흘만에 합병한 것처럼 무력 충돌을 극히 자제하려는 서방이 머뭇거리는 동안 '숙원'인 돈바스를 합병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현재 외교적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라는 점은 8년 전과 다른 환경이다.

20일 프랑스의 중재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제안으로 미·러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된 데다 이를 위해 24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진입 명령'이라는 강수를 둔 것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담판을 앞두고 협상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