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 공개 규정한 '관련 자료' 명문 규정 없이 지나치게 범위 넓다"
대법 "재건축조합 속기록·자금수지보고서, 공개 대상 아냐"
재건축조합이 조합원 등에게 공개해야 하는 '관련 자료'에 회의 속기록과 자금수지보고서까지 포함될 필요는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도시정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추진위원장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주민총회 회의록 등 서류와 관련 자료를 조합원, 토지소유자, 세입자에게 15일 안에 온·오프라인으로 병행 공개하게 한 관련 법령을 어기고 2015∼2019년 작성된 회의 자료와 의사록, 속기록 등을 공개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검찰의 기소 범위에 포함된 속기록 작성 대금 지급 자료, 2018년 자금수지보고서, 카드사용내역서 등의 비공개 혐의는 법령이 규정한 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1심이 무죄로 본 자금수지보고서 비공개 부분까지 유죄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A씨가 조합장에 취임할 무렵부터 조합이 재정난을 겪고 있었던 점과 조합원들이 선처를 탄원한 점 등을 고려해 벌금은 150만원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관련 자료'의 범위에 문제가 있다며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도시정비법은 공개 대상 서류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도 '관련 자료'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밖에 공개가 필요한 서류와 관련 자료는 대통령령에 위임해 추가할 수 있는 규정을 둔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시정비법이나 그 위임에 따른 시행령에 명문의 근거 규정이 없이 정비사업의 투명성·공공성 확보나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 등 규제의 목적만을 앞세워 '관련 자료'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해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형벌법규 해석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도시정비법은 막대한 사업 자금을 운용할 권한을 가진 조합 임원이 건설사와 유착해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투명성·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자료 공개를 규정하지만 무엇이 '관련 자료'인지에 관한 명확한 근거 규정이 없어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도시정비법 규정들을 검토한 뒤 속기록이나 녹음은 '보관 대상'이지 의사록과 같은 '공개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검찰이 결산 자료의 '관련 자료'로 해석한 자금수지보고서 역시 결산보고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공개 대상에 넣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의 2심 판결 중 속기록과 자금수지보고서를 유죄로 판단한 부분을 다시 심리하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