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로또 판매액·백화점 명품 매출 사상 최고
팬데믹 통제 장기화로 사행 심리·보복 소비 확산

팬데믹 장기화에 지친 소비자들이 도박과 사치품 구매에 지갑을 활짝 연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이 만든 소비 변화…도박·사치품에 돈 몰렸다
지난해 주요 백화점 명품 부문 실적은 큰 폭으로 뛰었고, 로또 판매액은 사상 최초로 5조원을 넘어섰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판매 호조세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 도박산업도 지난해 사상 최대인 530억 달러(약 63조5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장기간의 팬데믹 통제로 해외여행 등 여가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소비자들이 스트레스 해소와 '보복 소비' 차원에서 도박을 하고 사치품을 사는데 몰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 코로나 이후 백화점 매출 급증…로또 판매 사상 최대
유통업계의 '맏형'격인 백화점은 불과 3∼4년 전만 해도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다.

다양한 형태의 할인점이 등장하고 온라인쇼핑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성장이 정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 매출은 전년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고 연매출이 1조 원을 넘는 점포가 속출했다.

특히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연매출이 2조5천억 원을 넘어서면서 일본 이세탄 신주쿠점과 프랑스 갤러리 라파예트 등을 제치고 매출 세계 1위 백화점으로 등극했다.

백화점의 이런 호실적은 사치품이 견인했다.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등 이른바 '3대 명품' 매장을 보유한 백화점들이 모두 1조 클럽에 가입했다.

'3대 명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신세계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5천173억 원으로 전년 대비 484.6% 급증했다.

코로나 사태 발발 전인 2019년 영업이익(4천678억 원)을 뛰어넘은 사상 최고치다.

백화점 사업부문 영업이익만 3천622억 원이었는데, 명품 매출이 44.9% 늘어난 게 결정적이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명품 매출이 전체 백화점 매출을 끌어올렸다"며 "팬데믹 통제가 장기화하면서 해외여행 등 여가활동을 못하게 된 소비자들의 '보복 소비'가 명품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백화점 입점매장 실적에서 볼 수 있듯 국내 시장에 진출한 주요 사치품 브랜드의 매출 신장세는 폭발적이다.

루이뷔통·샤넬·에르메스의 한국 법인은 2020년 각각 1조468억 원, 9천296억 원, 4천190억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외부감사법 개정에 따라 자산 또는 매출 500억 원 이상 유한회사에도 회계감사와 공시의무를 적용하면서 '3대 명품'의 실적이 처음 공개됐다.

루이뷔통코리아와 에르메스코리아의 매출 신장률은 각각 33.4%, 15.8%였다.

영업이익은 각각 177.2%, 15.9% 늘었다.

샤넬코리아 매출이 12.6% 감소한 건 다른 브랜드와 달리 면세점 실적까지 반영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면세사업부 매출이 80% 넘게 줄어든 반면 백화점, 부티크 등 일반 매출은 30% 가까이 뛰었다.

샤넬코리아의 전체 영업이익은 34.4% 증가했다.

팬데믹이 만든 소비 변화…도박·사치품에 돈 몰렸다
팬데믹 장기화의 또다른 수혜 업종은 도박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복권 판매액은 총 5조9천75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3% 증가했다.

복권 판매액은 2017년 4조2천억 원, 2018년 4조4천억 원, 2019년 4조8천억 원 등으로 서서히 늘다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5조4천억 원)부터 급증세를 나타냈다.

유형별로는 로또 판매액이 5조1천371억 원으로 전년 대비 8.4% 늘었다.

로또 판매액이 5조 원을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쇄복권(19.8%), 연금복권(29.2%), 전자복권(25.6%) 등은 판매 비중은 크지 않지만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팬데믹 이후 경마·경륜 등 대면 중심의 사행 산업이 위축한 데다 코로나 불황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사행 심리가 확산한 게 복권 수요를 늘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 美 도박산업도 초호황…LVMH는 티파니 덕에 최고 실적
팬데믹 장기화가 도박과 사치품 산업 호황을 이끈 것은 국내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 게임협회(AGA)는 16일(현지시간) 지난해 도박 산업 매출이 530억 달러(약 63조5천억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세워진 종전 최고 기록 436억5천만 달러(약 52조3천억 원)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미국 도박 산업 매출은 2020년 코로나19 봉쇄령으로 300억 달러(36조 원) 수준으로 축소됐지만 지난해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등의 카지노 업체들이 방역 수칙을 적용해 영업을 재개하면서 방문객이 급증했다.

카지노 매출은 지난해 450억 달러(약 53조9천억 원)로, 코로나 발발 전인 2019년 대비 6.6% 늘었다.

스포츠 베팅과 온라인 게임 산업도 성장하면서 80억 달러(약 9조6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팬데믹이 만든 소비 변화…도박·사치품에 돈 몰렸다
ABC 방송은 "전염력이 강한 코로나19 변이가 급증한 기간도 많은 도박꾼의 카지노 방문을 막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카지노 방문자의 평균 연령이 49세에서 44세로 낮아졌다"며 "미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돈을 지난해 도박에 썼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명품그룹인 LVMH도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지난해 사상 최고인 642억 유로(약 86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LVMH는 루이뷔통, 디오르, 펜디, 불가리, 티파니, 헤네시 코냑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다.

전년 매출과 비교하면 44% 증가한 수치고, 세계 경제가 코로나19에 발목 잡히기 전인 2019년 실적과 비교해도 20%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순이익은 120억 유로(약 16조 원)로 2020년보다 156%, 2019년보다 68% 늘었다.

각종 코로나19 제한 조치들이 서서히 완화되면서 고객이 다시 매장으로 몰려 브이(V)자형 회복이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 경제가 회복되고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유층 고객이 명품 매장으로 몰렸다"고 분석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매출 견인의 일등공신으로 보석 브랜드 티파니를 꼽았다
아르노 회장은 "1년 전 그룹에 합류한 티파니가 뉴욕 5번가의 플래그십 매장이 새단장을 위해 문을 닫았는데도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며 "LVMH가 세계 명품 시장을 주도할 탁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