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마약범죄 관련 국제적 책무 위반 소지"

이탈리아에서 대마초 재배 합법화를 위한 시도가 좌절됐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16일(현지시간) 대마초 재배 합법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치르게 해달라는 요구를 기각했다고 AFP,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
총리를 역임한 줄리아노 아마토 헌법재판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투표를 허용하면 이탈리아는 마약 관련 범죄와 관련된 국제적 책무를 위반하게 된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아마토 소장은 해당 국민투표는 대마초뿐 아니라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 강한 다른 마약류를 합법화하는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마초 재배 합법화를 위한 국민투표를 추진해온 이탈리아 단체들은 담배나 술 같은 합법적으로 허용된 물질보다 대마초의 위험성이 덜하다면서 개인적 사용을 위한 대마초 재배 허용, 소량의 대마초 판매 시 처벌 면제 등 대마초에 대한 규제를 완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했다.

단체들은 이를 위해 작년 9월부터 시민 63만명에게서 서명을 모아 대법원에 제출했다.

이탈리아에서 국민투표가 성사되려면 우선 최소 50만 명 이상의 시민 서명을 받아 대법원에 대출하고, 서명의 유효성에 대한 대법원의 확인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의료 또는 치료 목적을 제외한 대마초의 제조·유통·사용이 엄격히 금지돼 있고, 이를 어기면 최고 징역 6년 형에 처해진다.

대마초 합법화에 앞장서온 유력 인사 중 1명인 리카르도 마지 의원은 이번 국민투표 청원에 수십 만명이 서명을 한 것을 지적하면서, 헌재의 결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끔찍한 타격"이라고 비판했다.

이탈리아의 대마초 사용자는 전체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약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대체로 암시장에서 대마를 구매하거나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재배·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마초 재배 합법화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대마초 재배가 법적으로 허용되면 마피아와 다른 범죄조직이 수입원을 상당분 잃게 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교도소 과밀화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Lega)의 수장 마테오 살비니 등은 대마초 재배를 합법화할 경우 중독성이 강한 다른 마약류의 재배까지 부추길 소지가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한편, 유럽에서는 포르투갈이 2001년 대마 사용을 전면 합법화했으며,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개인적인 사용을 위한 대마 재배를 허용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