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설정, 흐릿해진 로맨스…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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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수 감독에겐 중국 작가 옌롄커의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순간 오랜 꿈을 실현해줄 것이라 믿었다"는 장 감독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소설과 같은 이름의 영화로 내놨다.
문화대혁명기 중국이 배경인 소설은 불륜 관계의 사단장 아내와 젊은 사병을 통해 마오쩌둥 이념과 사회주의 오류를 풍자하고 비판한 작품이다.
마오이즘을 격하했다는 이유로 2005년 출간 즉시 금서로 지정됐지만, 해적판이 인기를 끌고 외국에서 필독서로 꼽히는 등 대중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장 감독은 이 소설을 한국 영화로 만들기 위해 배경을 1970년대 가상의 사회주의 국가로 바꾸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언뜻 북한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은 북한 말씨를 쓰지 않고 이들이 섬기는 주석도 우리가 아는 인물과 다르다.

그는 반드시 간부가 되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번번이 승진에 실패한다.
자신을 책망하며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온다.
사단장(조성하) 사택에 들어가 취사병으로 근무하게 된 것. '투 스타' 상사를 가까이서 보필하게 된 그는 곧 가족과 도시에서 살게 될 수 있을 것이라 행복한 상상에 젖는다.
그러나 사단장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수련(지안)이 무광을 유혹하면서 계획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무광은 가까스로 수련을 거부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수련은 자신에게 하는 복무가 곧 인민에게 하는 복무라며 무광을 강압한다.
자신이 곧 인민이요, 주석이요, 체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자신을 단번에 전역시킬 수도 있는 권력을 쥔 그가 무서워 무광은 결국 불륜을 저지른다.
무광은 수련을 사모님 대신 '누님'이라 부르며 맹종한다.
처음엔 수련에게 잘 보여 승진을 하겠다는 야망 때문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싹트면서 위험천만한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나 소설과 비교해 쉬이 몰입하기 힘들게 만들어졌다.
원인 중 하나는 중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가상 국가'라는 배경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 말씨를 쓰는 주인공들이 스탈린을 닮은 주석을 섬기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의 교시를 숭배하는 모습은 다소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설정을 위한 설정이라는 느낌이 짙다 보니 목숨을 건 로맨스는 가슴을 충분히 뛰지 못 하게 한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역시 어색하고 갑작스럽게 닥쳐온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언급하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주인공들의 섹스 신호로만 소비되고 그 속에 담긴 저항과 풍자의 메시지는 휘발된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는 욕심 또한 줄였으면 더 좋았을 법하다.
등장인물들의 전사나 부가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데 시간을 할애해 장면은 늘어지고 러닝타임은 길어졌다.
온몸을 내던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고통스럽게까지 보이는 강도 높은 베드신을 소화해 파격적인 장면들을 완성했다.
오는 23일 개봉. 상영시간 146분. 청소년관람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