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우회해 러-유럽 직결…에너지 무기화 심화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 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새 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가 대러제재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노르트스트림-2 사업이 백지화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숄츠 총리 역시 미국과 뜻을 같이하겠다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노르트스트림-2 사업 포기와 관련해선 명확한 언급을 피해 바이든 대통령과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8일 러시아에 맞서는 서방 진영의 전열에 균열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지목되는 노르트스트림-2 사업의 경과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대러제재 핵심 '노르트스트림-2' 실체는…"러의 대유럽 지렛대"
◇ 우크라 경유 않는 러-유럽 직결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는 러시아에서 발트해 밑을 통과해 독일 해안에 이르는 장장 764마일(약 1천230㎞)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2012년 이 사업을 개시했다.

공사에는 110억 달러(약 13조1천억원)가 소요됐고, 셸과 빈터샬 등 유럽 에너지 기업들이 공사비 절반을 댔지만, 소유권은 러시아 국영 에너지회사 가즈프롬에 있다.

작년 9월 공사가 마무리됐고, 같은 해 12월 가스관에 천연가스를 채우는 작업이 시작됐지만,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EU)의 최종 승인이 나지 않은 까닭에 가동되지는 않고 있다.

독일 정부는 빨라야 올 하반기 최종 승인이 날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 독일, 미국ㆍ동유럽 국가 반대에도 사업 강행
미국은 2012년 노르트스트림-2 사업이 러시아의 대(對)유럽 지렛대가 될 것이라면서 사업 시작 당시부터 꾸준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독일과 갈등을 빚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노르트스트림-2가 개통되면 독일이 러시아 천연가스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돼 '러시아의 포로 신세'가 될 것이라며 어떻게든 사업을 중단시키려 했다.

후임인 바이든 대통령 역시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공사가 거의 완공될 즈음인 작년 7월 결국 노르트스트림-2 가동에 동의했다.

해당 사업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온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였다.

미국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 인접국들도 노르트스트림-2 개설을 격렬히 반대했지만 공사를 막지는 못했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운송하는 기존 파이프라인은 우크라이나를 경유하기에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통행 수수료를 챙겨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노르트스트림-2가 개통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천연가스의 양을 줄여 우크라이나를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할 소지가 있다.

유럽 에너지 시장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력도 더욱 커져 천연가스를 무기로 정치ㆍ외교ㆍ안보 등 사안에서 유럽에 압박을 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러제재 핵심 '노르트스트림-2' 실체는…"러의 대유럽 지렛대"
◇ 바이든 공언에도 사업 백지화 여부는 독일에 달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작년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움직임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접경에 대규모 병력과 군사 장비를 배치했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순식간에 위험 수위로 치솟았다.

미국에선 대러 제재를 위해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고,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차단' 의지를 표명하는데 이른 것이다.

다만, 독일 정부가 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지닌 상황에서 실제로 해당 사업을 백지화하는 결과가 나올지는 확실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내 분명히 약속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밝히지 않았다.

미국은 작년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연관된 선박회사와 보험사 등을 제재하려다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제재를 유예한 바 있다.

미 의회가 제재에 앞장서는 방안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텍사스를 지역구로 둔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부와 관계없이 노르트스트림-2 사업 관련자들을 제재하는 법안을 냈고, 이 법안은 지난달 의회에 상정됐다.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은 지난주 타협안에 거의 도달했다고 밝혔지만, 코네티컷주 출신의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가 즉각 제재에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법안이 제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 독일이 파이프라인 사업 개시를 계속 유예할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러제재 핵심 '노르트스트림-2' 실체는…"러의 대유럽 지렛대"
◇ 독일, 노르트스트림-2에 침묵…대러진영 균열 생기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독일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에서의 "긴장이 더 높아질 경우" 노르트스트림2 사업 개시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독일 정부 안에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러시아에 천연가스를 의존하는 상황에서 해당 사업이 중단되면 자국내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까닭에 일각에선 독일이 나토 동맹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숄츠 총리는 7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나토 동맹국과의 공조를 강조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고 WP는 평가했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완전히, 전적으로, 전폭적으로" 독일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숄츠 총리는 노르트스트림-2 사업 포기와 관련해선 명백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와 관련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7일로 예정됐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의 회담이 갑자기 취소됐고,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베어복 장관과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양측간에 심한 견해차가 있었다면서 타협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다만, 베어복 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서방의 제재를 촉발한다면 독일은 "경제적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숄츠 독일 총리는 다음 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