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전남·제주서 기대·우려 교차…정치권 한마디에 주식시장도 널뛰기
"환경·경제적 타당성 살펴 공론화 절차 뒤 추진해도 늦지 않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논란이 지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줌in제주] 꺼냈다 말았다 '전남∼제주 해저터널'…지난 대선 데자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에서 제주까지 KTX 고속철도를 놓는 해저터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하면서 발단이 됐다.

즉각 전남에선 대선공약 반영을 공식 요청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선 반면, 제2공항 건설 논란이 한창인 제주에서는 '뜬금없다'는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후보 측은 제주지역 사회의 반발이 이어지자 부랴부랴 관련 계획을 공약에서 제외하는 모양새다.

지난 18·19대 대선의 '데자뷔'(기시감) 같은 모습에 지역사회에선 갈등과 논란만 재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20년간 이어진 해저터널 건설 논란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계획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1994년 도버해협 38㎞를 가로지르는 유로터널(50.45㎞)을 완공하자 한·중·일 해저터널 계획에 이어 전남∼제주 해저터널 계획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02년 관련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당시 국내 건설업계에서는 놓쳐서는 안 될 대형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심지어 제주에서 출발해 해저터널을 지나 복원된 경의선을 타고 남원, 평양, 영변 약산을 거치는 가상의 통일 여행을 그린 뮤지컬이 등장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지난 2007년 9월 5일 제주도와 전라남도는 구체적인 해저터널 청사진을 내놓고 건설계획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했다.

제주시∼추자도∼보길도 73㎞ 구간에 해저터널을, 보길도∼노화도∼완도 36㎞ 구간에는 해상 교량을 각각 건설해 총연장 109㎞를 연결한다는 복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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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비용은 14조∼20조원으로 추산했다.

완공된다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KTX로 2시간 26분 정도가 걸려 항공 노선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구상안이 발표되자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접근성이 좋아져 보다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방문할 것이란 기대와 함께 체류객 감소와 '섬' 정체성 상실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에서는 공항 수요 예측에 따른 신공항 건설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해저터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갔다.

게다가 2008년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 등에 주력하는 현실 속에서 해저터널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린 것은 정치권이었다.

2009년 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여·야 정치인들이 해저터널 건설과 관련한 타당성 연구 용역비를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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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일사천리로 '호남-제주 해저고속철도 타당성 연구용역 사업비'란 명목으로 10억원을 책정, 이듬해부터 용역이 시작됐다.

사업추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만 갔다.

오랜 기간 이어진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정치인의 한마디 한마디와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소문에 관련 업체의 주가도 급등했다.

일부 종목은 개인투자자들이 매수로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등 주가는 수개월간 널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2012년 7월 정부의 예비타당성 용역 결과, 편익비용(B/C)이 0.78로 나와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 B/C가 1.0 이하이면 경제성이 낮다는 것을 뜻한다.

앞서 한·중·일 해저터널 역시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 등으로 '경제성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 대선 때마다 등장한 해저터널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은 대선 때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였다.

이번 제20대 대선은 마치 지난 대선의 데자뷔를 보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제18대 대선을 1개월 앞둔 지난 2012년 11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대선공약으로 해저터널 건설 공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반대 여론이 형성되자 공약을 철회했다.

[줌in제주] 꺼냈다 말았다 '전남∼제주 해저터널'…지난 대선 데자뷔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관련 논란이 일었던 다음날 제주를 찾아 "신공항 건설 또는 제주공항 확장이 우선"이라며 "해저터널은 장기적으로 공항으로 교통수요를 다 감당할 수 없을 때 검토할 수 있는 문제"라고 못을 박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 2017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숙원사업을 후보들의 공약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주에서는 제2공항 건설 추진을 요구했지만, 전남에서는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추진이라는 상반된 요구를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는 광주에서 2012년 대선 사례를 소개하며 유보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전남에서는 희망하는데 제주에서는 제2공항이 우선이어서 그것(해저터널)이 돼버리면 제2공항이 무산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며 "좀 더 논의하고 검토해야 할 문제이고 논의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결국 관련 공약은 채택되지 않았다.

[줌in제주] 꺼냈다 말았다 '전남∼제주 해저터널'…지난 대선 데자뷔
이번 제20대 대선에도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해저터널 건설을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3일 "KTX와 같은 고속철도의 효율이 높아졌고, 탄소제로 사회로 가야 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단거리 국내 노선을 폐지하는 추세"라며 "제주도의 경우 해저터널을 연결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2시간 반이면 가기 때문에 오히려 빠르다"고 말했다.

이에 즉각 전남에선 대선공약 반영을 공식 요청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지만, 제2공항 건설 논란이 뜨거운 제주에서는 '뜬금없다'는 부정적인 기류가 흘렀다.

제주 지역사회에서 반발이 이어지자 이 후보 측은 관련 내용을 공약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앞서 이 후보가 영남·호남과 제주 등을 초광역 단일경제권으로 묶는 '남부 수도권' 구상을 발표한 만큼 해저터널 건설 재추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호남과 제주를 잇는 해저터널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제주는 이미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큰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제2공항 갈등이 진행 중이다.

이에 더해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해저터널 논란에 제주도민들은 당혹감과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남과 제주 지역사회의 의견을 두루 살펴 공론화 절차를 거치고 환경문제와 경제적 타당성 등을 모두 살펴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