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으면서도 외롭지 않은…'낭만적 은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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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외딴 섬에서 28년간 누린 것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파에 섞여 이 글을 쓰면서 혼자임을 더 많이 누린다.
"
대니얼 디포는 1720년 '로빈슨 크루소'의 속편을 썼다.
무인도에서 살아 돌아온 크루소는 일상에서 심오하게 혼자일 수 있었다.
그에게 런던의 인파는 명상의 방해요소가 아니라 생산적 명상의 좋은 조건이었다.
그는 집단 속에서 숨 쉴 틈을 마련하는 방법을 알았다.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혼자 있기의 다양한 방식과 의미를 조명하는 책이다.
영국 오픈대 사회사 명예교수인 저자는 먼저 18세기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책 '고독에 관하여'에서 행복한 혼자 있기에 대한 통찰을 빌려온다.
스위스의 의사이자 철학자 요한 게오르그 치머만이 1791년 쓴 이 책은 은둔과 사회생활의 균형을 강조했다.
낙담이나 종교적 광신에 따른 은둔은 내면을 가다듬을 목적의 은둔과 다르다.
그는 사색으로 고독의 장점을 취하고 현실에 다시 뛰어드는 정신력을 높이 샀다.

산보는 여전히 낭만적 은둔의 핵심 수단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화창한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집을 나서면, 우리는 친구들이 아는 자신을 벗어던지고 익명의 보행자 대군단의 일부가 된다.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보낸 뒤 집단 속에 있으니 참 좋다.
"
영국 정부는 2018년 '외로움 담당' 차관을 임명했다.
혼자 있기가 우울증 같은 사회적 질병을 유발한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저자의 은둔 예찬은 한가롭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 고독한 사람은 집단 속에 있지 않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신학자 폴 틸리히에 따르면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고독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디지털 혁명 시대 인간은 사회적 교류와 단절의 극단을 오간다.
디지털 환경은 저자가 제시하는 세 가지 은둔의 유형 중 하나인 '연결된 채 혼자 있기'를 좀더 쉽게 만들었다.
18세기 집단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고독이 부각됐다면, 최근에는 고독과 집단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지가 중요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1791년 요한 치머만이 고독을 두고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이라고 한 정의는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
"
더퀘스트.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328쪽. 1만7천5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