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항의 예상에도 통화 제안…'한미일 공조균열' 우려 불식 의도
보도자료 방점도 달라…한국은 '사도광산', 일본은 '북한 미사일' 강조
북핵공조 의식했나…3달간 냉랭하더니 먼저 전화한 日외무상
과거사 갈등 등으로 한국과 냉랭한 관계를 이어오던 일본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이 취임 약 3개월 만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먼저 통화를 요청해와 배경이 주목된다.

한일 외교당국은 지난 3일 오후 정 장관과 하야시 외무상이 통화를 하고 한일관계와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사실을 각기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10일 취임한 하야시 외무상이 카운터파트인 정 장관과 통화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본 측 요청으로 통화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야시 외무상은 취임 후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외교장관과 통화를 했지만 정 장관과 통화는 3개월이 다 되도록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간에도 예전에는 외교장관이 새로 취임하면 전화로 인사를 나누고 양자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에 냉각된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평도 나왔다.

이번 통화 전까진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리셉션에서 잠시 만나 간단한 대화를 나눈 것이 두 장관의 처음이자 유일한 의사소통이었다.

한국은 강제징용 판결 등 갈등의 해법을 찾자며 대화에 적극적이지만, 일본은 '한국이 해결책을 가져오라'며 소통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그러던 차에 하야시 외무상이 먼저 한국에 통화를 요청하며 소통 시도에 나선 것은 다소 갑작스럽게 여겨진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한 직후여서 한국의 강력한 항의가 있을 게 뻔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일본의 의도는 두 장관의 통화 결과 보도자료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사도광산 항의'를 보도자료에서 가장 먼저 거론한 한국과 달리 일본 외무성은 두 장관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한일, 한미일 협력 필요성을 재확인했다는 내용을 보도자료 첫머리에 배치했다.

여러 과거사 갈등에도 한일·한미일 협력에는 문제가 없을 것임을 재확인하려는 데 전화를 건 목적이 있었다는 의미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미일 3자 공조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일본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천을 강행하며 가뜩이나 과거사 갈등으로 경색된 한일관계에 대형 악재를 더했다.

따라서 사도광산을 둘러싼 한일 갈등이 한미일 대북 공조에까지 불똥이 튀는 상황을 차단하려 했을 수 있다.

한미일 공조 강화를 위해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미국에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한일 외교장관 전화통화에 앞서 이뤄진 미일 외교장관 통화에서도 한일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져 미국이 일본에 한일관계 관리 필요성을 언급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측은 지난달 28일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천을 발표하기 전에 미국 측에 사전 설명한 것으로 보도되는 등 미국을 의식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그만큼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부담을 느끼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야시 외무상은 전날 통화에서 사도광산과 관련한 한국의 항의를 반박하면서도 '한국 측과 성실하게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일본 언론은 전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7월 세계유산협약 운영 지침을 개정해 다른 국가들과의 잠재적 갈등을 피하고자 등재 신청 전에 관련국과 '건설적 대화'를 하도록 했다.

일본이 사도광산 등재 신청 과정에서 이를 이행하지는 않았지만 뒤늦게라도 관련 협의를 진행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되며 한국의 우려 사항을 충분히 다룰 의미 있고 실질적인 대화가 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