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검증 명분으로 화성-12형 실전배치 확인…무력과시·대미 압박 극대화
2017년엔 화성-12·14·15 순서 발사…"ICBM 발사 시간 문제"
'어게인 2017' 가능성…북, '화성-12형' 거쳐 ICBM 도발로 가나
북한이 '품질검사'를 명분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4년여 만에 쏘아 올리면서 이른바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도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1일 보도에서 전날 발사가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의 '검수사격 시험'이었다고 밝혔다.

검수사격은 양산 후 실전 배치되는 미사일을 무작위로 골라 품질을 검증하는 시험 발사다.

북한이 2017년 괌과 알래스카 기지까지 사정권으로 하는 화성-12형의 전력화를 선언한 뒤 실전배치를 사실상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북한의 무기 개발 패턴은 정상(30~45도)보다 높은 각도로 쏘는 '고각' 발사로 사거리를 줄여서 쏘다가 정확도에 대한 신뢰도가 확보되면 내륙을 관통하는 실거리 사격을 하는 형태였다.

화성-12형도 이미 2017년 5월 14일(4차 발사) 평북 구성에서 이번 발사와 유사하게 정점고도 2천115㎞, 사거리 787㎞로 고각 발사가 이뤄졌다.

같은 해 8월과 9월(6차 발사) 평양 순안에서 정상 각도로 쏴 2천∼3천㎞ 비행 후 일본 열도를 넘기는 실거리 사격이 두 차례 실시됐다.

전날 발사는 7번째였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전문연구위원은 "화성-12형은 2017년 실전 배치를 위한 개발이 이미 완료됐다"며 "이번 발사는 품질검사를 명분으로 한 무력 시위 성격의 발사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은 이날 화성-12형이 이동식 차량발사대(TEL)에서 발사되는 장면, 미사일 상승 시 상공에서 드론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함께 탄두부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화상 사진도 공개해 눈길을 끈다.

화상 사진 공개는 미사일이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재진입하는 기술을 갖췄다는 것을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

대기권 재진입 순간 탄두부에 5천도 이상의 고열이 발생하는데 이런 고열로부터 핵탄두를 보호하는 기술을 재진입 기술이라 한다.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이 그간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ICBM을 완성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에 우주에서 찍은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이런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분석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갖췄다는 것은 ICBM 완성을 뜻하기도 한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위원은 지구 화상사진을 공개한 데 대해 "추진체의 단이 잘 분리됐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높은 고도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이런 사실을 공개한 데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내부적으로는 괌과 주일미군기지를 비롯해 알래스카까지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를 실전 배치했다는 등 자체 무력을 과시한 측면이 있다.

북한이 화성-12형 발사 사실과 함께 미사일 탄두부에서 찍었다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드러난 사진을 공개한 것도 이 중거리 미사일의 타격 범위를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제8차 당대회에서 언급했던 1만5천000㎞ 내 다양한 전략적 대상에 대한 안정적인 타격 능력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미사일 능력 측면에서는 1차 라인으로 1천㎞ 내 타격 능력, 2차 라인으로 3천~5천㎞ 내 타격 능력, 3차 라인으로 5천㎞ 이상 내 타격 능력을 사거리별로 안정성을 보여주는 데 목적으로 두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외적으로는 이번 검수사격 방식을 통해 괌을 타격권에 둔 중거리 미사일의 실전배치 사실을 확인하면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달에만 7차례 미사일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강대강' 원칙 기조를 분명히 했다.

앞으로 미국을 겨냥한 기존 무기 검수사격과 신무기 공개가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최근의 무력 시위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벼랑끝전술'이 아니며 "미국을 겨냥한 활동의 기조는 '제압에 의한 굴복'으로 정해져 있다"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22일 전한 바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화성-12형 발사는 마침내 실전 핵 능력을 동북아 역내를 사정권으로 확보했음을 선포한 것"이라며 "북한이 연초부터 몰아치는 핵미사일 시험의 분명한 목적은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군축 또는 군비제한 회담을 시행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북미 갈등이 고조에 이르렀던 2017년 당시에도 화성-12형을 시작으로 ICBM인 화성-14형과 화성-15형 시험 발사에 나섰던 패턴을 고려하면, 올해 역시 유사한 수순으로 도발 수위를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정치적 기념일인 2월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이나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등이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은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민 실장은 "2017년에도 화성-12형 발사 성공 이후 화성-14형, 화성-15형 발사로 빠르게 사거리 확장 실험을 했다"며 "향후 ICBM 역시 '검수' 형식으로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추가적 핵실험과 ICBM 발사도 타이밍의 문제일 뿐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여러 방면에서 전략적 경쟁을 펼치는 중국을 더욱 압박하고, 이에 따라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을 펼 수 있어 ICBM 도발에는 신중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박원곤 교수는 "ICBM 발사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이 중국 제재를 포함한 세컨더리 보이콧 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미국이 대중 강경책을 북한에 적용할 수 있고, 북한도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 ICBM 발사는 신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이번 화성-12형 발사에 대해 "주변 국가들의 안전을 고려해 서북부지구에서 조선(북한) 동해상으로 최대고각 발사체제로 사격시험을 진행했다"고 전했는데, 실사격이 아닌 고각 발사로 '나름의' 수위 조절을 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