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문 연 비정규직 쉼터…"영등포구와 조합이 일방적 사업 진행"
"명절 때에도 길에서 농성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꿀잠은 안 쉬고 농성장을 찾아가 차례 지내고 하는 걸 봤어요.

"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비정규직 쉼터 '꿀잠'에서 만난 기아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46)씨는 이날 꿀잠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소집권자이기도 한 그는 이날 오후 2시 꿀잠에서 회의가 있다고 했다.

김씨는 "이런 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꿀잠에서 회의도 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잠도 자고 하면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꿀잠은 각종 차별과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단꿈을 꿀 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2017년 8월 문을 열었다.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문정현 신부 등도 힘을 보탰다.

서울에서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거나 집회에 참석하러 올라오는 노동자들도 쉴 곳이 없으면 꿀잠을 찾았다.

태안화력발전소 고(故) 김용군 노동자 유족도, 한국마사회 고(故) 문중원 기수 유족도 한동안 꿀잠에서 머물렀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해 평균 약 4천명에 이른다.

꿀잠의 5층짜리 건물 중에서 숙소로 쓰는 공간은 4층이다.

잠을 잘 수 있는 방은 물론이고 화장실, 욕실, 거실, 베란다 등을 갖췄다.

옥탑방에도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공간이 있어 하루 최대 25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꿀잠은 명절에도 문을 닫지 않지만, 찾는 이가 드물어 거리로 나가 차례를 지낸다.

이원수 꿀잠 상임활동가는 "농성자들도 시위 현장을 지키고 다른 분들도 거리연대를 가서 명절 시기에는 숙박자가 거의 없다"며 "올해 설에도 세 번의 차례가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설에는 서울고용노동청 앞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 명동 세종호텔 앞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 63빌딩 앞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농성장 등에서 차례를 지낼 예정이다.

꿀잠은 최근 신길2구역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2020년 3월 재개발조합 설립인가가 나고 재개발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꿀잠도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재개발조합이 공시한 정비계획변경조치계획안에는 꿀잠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정현 신부 등이 주축이 된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대책위는 지난해 11월 영등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등포구와 재개발조합이 어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11월부터 매일 1시간씩 영등포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재개발조합 설립조건인 토지주의 75%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동의하지 않은 주민들의 터전까지 빼앗겨선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 "지난 25일 주민설명회에서 꿀잠 존치 의견을 전달했지만, 대토나 청산 등 방안을 찾기 위해 협의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다음 달 7일까지 신길2구역 정비계획변경안을 주민 등 이해관계인에게 공람하고 의견 청취를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대한 꿀잠 존치 의견을 모아 의견서를 제출하고 이후에는 서울시를 상대로도 움직임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