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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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비켜줘"

최근 지하철에서 한 남성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을 떡하니 차지한 채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남성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 '도촬'(도둑 촬영)'을 통한 '인증샷'을 올리며 임산부를 향한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수준 이하"라며 공분했습니다.

왜 이 남성은 임산부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은 걸까요.

임산부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길거리에 이어 가장 불편함을 호소한 장소는 바로 대중교통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전국 임산부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임산부의 44.1%가 일상생활에서 겪은 가장 불편한 경험으로 '대중교통 배려석 이용 불편'을 꼽았습니다. 1위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민들로 인한 '길거리 흡연'(73.6%)이었습니다.

거듭된 불편함으로 인해 임산부 배려석을 법으로 확보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습니다. 본인을 '노산에 어렵게 시험관으로 아기를 가진 임산부'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임산부 자리에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있는 경우가 다수"라며 "비켜달라고 할 수도 없고 비켜 줄 생각도 안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물론 배려석이고 호의로 양보받으면 좋겠지만, 출퇴근하는데 임산부 좌석에 편히 앉을 수 없어 아기 한 명 무사히 낳기도 힘든 현실"이라며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이 법으로 확보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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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왜 배려를 강요하냐"는 목소리인데요. 최근 서울대학교 한 학생은 익명으로 올린 글에서 "왜 본인의 성행위에 따른 결과물(아이)을 가지고 타인이 피해를 봐야 하거나, 배려를 요구당해야 하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학생은 과거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반말로 핀잔을 들었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임산부 배려석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지만, 여전히 시민들 사이에서는 '임산부만 앉아야 하는지', '비어있을 때는 앉아도 되는지' 등 여러 의문 섞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은 2020년 기준 8771건이 접수됐습니다. 2018년(2만7589건)에 비해서는 약 3분의 1 수준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하긴 했지만,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마찰은 계속해서 빚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임산부들은 임신에 대해 '겪지 않으면 절대 모를 고통'이라고 표현합니다. 10년을 지나고 있는 임산부 배려석 논란, 종지부를 찍을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약자를 위한 '비움의 아름다움' 이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