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바이오벤처인 에이비엘바이오가 최근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에 파킨슨병 치료제 후보물질(ABL301)을 1조2720억원에 기술수출해 화제가 됐습니다.

‘ABL301’은 파킨슨병의 원인인 알파 시누클레인 덩어리를 제거하는 약물입니다. 덩어리를 공격하는 약물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업계는 사노피가 ABL301을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높은 뇌혈관장벽(BBB) 투과율입니다. 뇌혈관장벽이 뭐길래 사노피가 주목한 걸까요.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입니다. 곳곳에 신호를 보내 생체 항상성을 유지해주기 때문이죠. 그만큼 ‘외부인’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됩니다. 뇌혈관장벽은 뇌 기능에 필수적인 물질만 매우 선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평상시 뇌혈관장벽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내지만, 뇌 질환을 치료하고 싶을 때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치료 약물을 투여해도 ‘외부인’으로 인식해 통과시켜주질 않는 것이죠. 오원종 한국뇌연구원 박사는 “뇌 질환 치료에 필요한 물질을 선택적으로 투과시키는 게 난제 중 난제”라고 말했습니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수요가 늘어나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퇴행성 뇌질환 뿐만 아니라 각종 뇌 전이성 암와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제 개발도 뇌혈관장벽에 번번히 막힙니다.

그간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500달톤 이하 크기의 저분자 화합물을 써봤지만 뇌에서 효과를 내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았습니다. 화합물이 뇌에서 반응(인산화)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이후 질환 유발 단백질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항체를 뽑아 치료제로 개발하는 시도가 이뤄지게 됐습니다. 화합물보다 효과가 좋으면서 안전성도 높일 수 있었죠. 하지만 크기가 문제였습니다. 뇌혈관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는 통상 저분자의 기준으로 쓰이는 400~500달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항체는 무려 15만달톤에 달했죠.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뇌혈관장벽을 열 수 있는 약물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열쇠’를 달아보자는 생각입니다. 이때 필요한 기술이 에비엘바이오 등이 보유한 이중항체 기술입니다. 이중항체는 말 그대로 항체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의미입니다. 알파 시누클레인 응집체를 공격하는 항체를 하나 달고, 반대편에 뇌혈관장벽을 뚫을 수 있는 열쇠(항체)를 달았습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뇌혈관장벽 표면에 있는 인슐린유사생장인자 수용체(IGF1R)를 공략했습니다. 여기에 결합하면 뇌혈관장벽이 문을 열어주는 것이죠. 전임상에서 단일항체보다 투과율이 13배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글로벌 제약사 로슈와 드날리는 또 다른 수용체인 트랜스페린 수용체(TfR)를 공략합니다.

최근에는 크기가 큰 약물이나 항체 등을 엑소좀으로 캡슐처럼 싸서 뇌에 보내겠다는 시도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엑소좀은 세포 유래 물질이기 때문에 뇌혈관장벽이 별 의심 없이 통과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트로이 목마 전략’이죠.

초음파로 뇌혈관장벽의 ‘틈‘을 넓혀 약물을 투과시키는 방법도 연구 대상입니다. 마치 벽돌집의 외벽처럼 생긴 뇌혈관장벽에서 벽돌과 벽돌 사이 틈을 벌리는 것이죠. 하지만 벌어진 틈 사이로 원하지 않는 물질까지 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초음파 이전에는 삼투압 원리를 이용해 혈관 내피세포가 팽창, 수축하는 사이를 노려 약물을 뇌로 전달시키는 방법이 시도되기도 했습니다.

한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