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수영/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배우 정수영/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저는 아들 교육 때문에 시골로 이사갔는데,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배우 정수영은 아들 교육 때문에 경기도 여주 면소재지로 이사했고, 아동심리학과 발달심리학 을 공부하며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TV조선 주말드라마 '엉클' 속 공식 '밉상' 천다정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인물이었던 것.

물건을 드는 것은 물론, 옷을 입는 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럿인 연예계다. 도움을 받는 게 익숙하고, 특별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섭섭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배우 정수영은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한다"면서 "과도한 도움은 배우를 망치는 길이라 주변에도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들을 위해 여주 자택에서 서울까지 기차나 전철을 타고 이동할 정도. 정수영은 "제가 선택한 일이니, 불편함도 제가 감내하는 게 맞다"면서 "그걸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해선 안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얘기를 나눌 수록 '엉클'의 천다정과 달랐다.

'엉클'은 이혼한 누나의 아들을 돌보는 '루저' 삼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폭력적인 시어머니, 그와 함께 때리는 남편을 피해 이혼 후 야반도주한 왕준희(전혜진)는 음악을 사랑하는 아들 민지후(이경훈)를 위해 음악 특성화 초등학교가 있는 신도시로 이사한다. 천다정은 이곳의 엄마들의 모임 '맘블리'의 임원이다. 맘블리를 도구 삼아 학교는 물론 지역 상권까지 쥐락펴락하고, 국회의원과도 결탁한 박혜령(박선영)의 오른팔이었고, 박혜령이 물러난 후 맘블리의 리더 격인 '다이아몬드'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인물이다.

본인은 전세로 살면서, 왕준희, 민지후 모자를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무시하고, 박혜령에게는 꼼짝도 못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밉상'이지만, 정수영은 감칠맛나는 연기로 그런 천다정마저 사랑스럽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특히 박혜령의 악행이 밝혀진 후 벌이는 육탄전은 통쾌한 쾌감을 선사했다.
배우 정수영/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배우 정수영/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아들마저 "엄마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때리고 싶고, 짜증난다"고 할 정도로 천다정을 소름돋게 연기해 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 정수영은 "대본을 보며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라고 했을 정도로 천다정이 이해가 안될때도 있었지만, 모성애라는 키워드 하나만 생각했다"면서 극에 몰입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전 아이를 자유롭게 키웠어요. 일부러 작은 학교를 찾아갔고요. 지금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고, 학교 수업을 마치면 운동장에서 아이들끼리 놀아요. 축구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동네 엄마들과 친해졌죠. 저희들끼리도 단체 채팅방이 있지만 '맘블리'와는 전혀 달라요. 그래서 대본을 받고 너무 놀랐어요. '너무 과장된 게 아니냐'고 작가님께 여쭤봤을 정도였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다정이라는 인물을 제가 먼저 이해해야 시청자들에게 납득을 시킬 수 있으니 모성애로 접근했어요. 그의 모든 행동의 베이스는 모성애였으니까요."

정수영의 얄미운 연기에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포털에 올라오는 실시간 댓글을 보며 반응을 모니터했다는 정수영은 "육두문자가 올라오면 클린봇이 바로 삭제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며 "깜짝깜짝 놀랐지만, (박)선영 언니가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거니 상처받지 말자'고 하더라"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극중에선 맘블리 멤버들 끼리도 티격태격 거리지만, '엉클'을 함께하면서 선영 언니, (황우)슬혜 언니와 정말 친해졌어요. 촬영이 끝난 후에도 따로 만나고요. 선영 언니는 '앞으로 나도 저런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해주셨고, 슬혜 언니는 10년 전 단막극을 같이 해서 이전부터 친했는데, '엉클'을 하며서 더 의지하고, 친하게 됐어요. 제 아들 세찬 역을 맡았던 박시완 어린이도 제가 슬혜 언니에게 '언니'라고 하는 걸 보며 놀랐는데, 제가 동생이 맞습니다.(웃음) 솔직히 언니 외모가 사기인 거죠."

'엉클'에서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엄마로 나오면서 아들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너무 잘생겨 깜짝 놀랐다"고 말할 만큼 '아들 바보'의 면모를 보여준 정수영이었다. 아들 같은 아이들과 함께 하며 "'우리 애도 연기를 시키면 더 잘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적이 없냐"고 묻자, 정수영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저는 고등학교때까지 성악을 전공했고, 대학교에 원서쓰러 갔다가 과 이름을 보고 재밌어 보여서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붙어 연기자가 됐어요. 굉장히 우연히, 불량하게 연기를 시작했죠. 그러면서 느낀게 이쪽 분야는 재능이 기본으로 깔려야 하고, 그런 재능을 갖고 피 터지게 하는 애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거 였어요. 그래서 저희 아들에게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지원은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저희 아들은 '연기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웃음)"
배우 정수영/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배우 정수영/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이었던 천다정을 "연기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연출자인 지영수 감독과 대본을 쓴 박지숙 작가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특히 박지숙 작가에 대해서는 "예전에 MBC '히어로'라는 드라마를 같이 했는데, 정말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 있다"면서 인연을 소개했다.

이들은 완벽하게 정수영을 믿었고, 정수영의 해석으로 지금의 천다정이 완성됐다. 그럼에도 정수정은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하고싶은대로, 자유롭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 모든 걸 다 맡겨 주셨어요. 그래서 불안했어요. 이게 맞나 싶었죠. 그런데 그땐 또 '맞다', '괜찮다' 해주시더라고요. 감사했어요. 그래서 '엉클' 촬영장은 행복했고, 잊을 수가 없을 거 같아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