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복권의 정치경제학
요즘 복권 하면 온라인 복권인 로또를 떠올리지만 예전에 주택복권이 대세였다. 한국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복권의 효시는 주택복권이었다. 주택은행(현 국민은행)이 복권을 발행하고 판매했지만 사실상 정부 업무를 대행한 것이다. 처음으로 주택복권이 나온 때는 1969년 9월 15일이었다. 복권 한 장의 값은 100원이었고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괜찮은 주택의 가격이 200만원 정도였으니 꽤 큰 금액이었다.

주택복권도 애초 매주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판매됐는데 사는 사람이 크게 늘자 주택은행은 한 달에 세 번으로 늘리더니 나중엔 1주일에 한 번 발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주택복권의 당첨번호를 정하는 이벤트는 TV에서 중계했다. “준비하고 ~ 쏘세요”라는 사회자의 멘트는 영화, 라디오, 신문 등에서 차용할 정도였다. 사회자가 외치면 정말로 화살을 쏴서 과녁을 맞히고, 과녁에 적힌 번호로 당첨자를 가렸다.

복권은 하지만 이처럼 애틋한 추억으로만 기억하기엔 감춰진 것들이 너무 많다. 우선 승률(기대수익률). 가장 최근 자료를 보면 복권의 기대수익률은 51.6%였다. 지난해 상반기 복권은 2조9392억원어치가 판매됐으며 당첨금은 1조5152억원이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자료다. 정부는 평균 50%에서 당첨확률을 맞춘다. 그나마 1등 당첨 확률은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 2만원씩 매주 산다면 1년에 52만원을 잃는다는 얘기다.

50%인 복권의 승률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카지노와 비교해보자. 파라다이스와 강원랜드가 상장했던 2002~2003년의 일화다. 파라다이스 관계자에게 물었다. 파라다이스 카지노장의 승률은 어느 정도인지. 답은 90% 약간 넘는 수준에서 맞춘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는 92% 수준, 사업 초기 단계였던 강원랜드는 88% 수준이라고 했다. 복권을 어찌 도박에 비교하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기자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런 버핏이 도박도 하지 말고 복권도 사지 말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심지어 매주 꽤 큰 돈을 복권에 넣는 사람하고는 투자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투자는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 향후 전망에 기초해서 결정하는데 복권은 그냥 투기심리에 따라 돈을 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률을 계산하면 그냥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복권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좋은 일 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장학사업, 주거안정사업, 소외계층복지사업, 문화예술사업…. 그러면서 감추는 게 또 하나 있다. 복권을 사는 사람의 대부분이 서민 또는 저소득층이란 사실이다. 복권을 분석한 모든 경제학자들은 부유층은 대부분 복권을 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가 복권 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거안정이나 소외계층복지 등 서민과 저소득층을 위한 돈은 서민과 저소득층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으로 결론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를 모른다고? 정확히 알고 있지만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복권 판매를 늘리려면 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삶이 팍팍해지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얘기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복권 판매액은 매년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엔 4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원으로 불었다. 기재부는 그 이유로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부행위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었다고 했다. 기부를 생각하며 복권을 사는 사람이 늘었다는 얘기다. 어처구니없는 해석이다.

복권 판매가 늘면서 정부 수익금도 비례해서 늘었다. 2017년 1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2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정부가 올해 잡고 있는 복권 판매 목표금액은 6조650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또 10% 늘리겠다는 것이다. 복권위원회 조직도 그간 크게 늘었다. 현재 3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