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인 현대산업개발 지시·관여 정황 "과실 책임 면키 어렵다"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공사 붕괴 원인과 책임자 규명을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경찰이 사고의 주요 추정 원인으로 무단 시공과 부실 공사를 지목했다.

규정을 어기고 하부층 동바리를 제거했고, 정상적인 설계 변경 없이 수십t 무게의 '역보'(역 'T'자 형태의 수벽)를 설치해 건물에 하중을 부과하고 연쇄 붕괴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무단 시공과 부실 공사를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이 직접 지시하거나, 협의한 정황도 드러나 원청의 과실을 규명해 책임을 묻는 수사가 본격화된다.

'동바리 미설치'·'역보 무단설치'…경찰, 붕괴 원인으로 지목
◇ 동바리 철거 "현산의 지시"
붕괴사고 현장에서는 36~38층에 걸친 동바리가 모두 제거된 것으로 드러나 연쇄 붕괴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동바리는 지지대(서포트)를 지칭하는 용어로 최상부 거푸집과 콘크리트 타설의 시공 하중을 하부층이 견딜 수 있게 설치하는 것이다.

국가 표준시방서상에는 30층 이상, 120m 높이 이상 건축물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거푸집 공사를 진행하면 하부 3개 층에 동바리를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붕괴사고 현장의 하부층인 38층 이하는 모두 동바리가 제거된 것으로 확인돼, 39층 콘크리트 타설 시공 하중을 하부층이 지탱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 주요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다.

철근 콘크리트 공사를 진행한 하청업체 A사는 지난해 12월 28일 36~37층, 올해 1월 8일 38층 등에 설치된 동바리를 모두 철거한 후 지상으로 내렸다.

A사 측은 "동바리 철거가 현산 현장 책임자(1단지 대리 현장소장) 김모씨의 지시였다"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동바리 철거가 원청과 하청의 공기단축과 공사비 절감 등 이익에 부합한 부실 공사 정황으로 보고 있다.

현산 측은 옥상 공사를 마치면 동바리 철거에 시일이 걸려 내부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고, 하청업체 측은 동바리를 인력으로 철거하는 인건비를 줄이려는 의도가 엿보였다는 의미다.

'동바리 미설치'·'역보 무단설치'…경찰, 붕괴 원인으로 지목
◇ 수십t '역보' 무단 시공한 곳만 붕괴…시공 뒤에도 '아찔'
두 번째 붕괴의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역보'의 무단 설치다.

역보는 정상적인 보의 형태 '┬'를 뒤집어놓은 '┴' 형태로 바닥 면 위에 수벽을 설치한 것을 말한다.

붕괴가 진행된 39층 아래 PIT(설비 공간) 층은 높이가 0.55~1.5m로 다양하게 나뉘는데, 1.5m 높이 구간에는 목제 선반을 동바리로 받치는 '헛보'를 만들어 특수 거푸집인 데크 플레이트(이하 데크)를 올려 시공했다.

그러나 PIT 층의 높이가 0.55m에 불과한 곳에는 동바리를 설치할 수 없어 '역보' 7개를 설치해 그 위에 데크를 올려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역보 7개는 각각의 두께가 30~40㎝에 달해 무게가 모두 수십t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결국 기존 35㎝ 슬라브 두께의 시공 하중이 큰 상황에 수십t의 무게가 더해져 붕괴를 야기했음이 의심된다.

붕괴 결과도 기존 헛보를 설치해 시공한 곳은 무너지지 않았고, 역보를 설치해 시공한 곳만 모조리 붕괴해 이러한 분석에 힘이 실린다.

역보 설치는 하청업체 A사가 현산 측과 협의해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역보는 일종의 비내력벽을 건축 구조물로 새롭게 만드는 것으로 안전성 검토를 거쳐 설계 변경을 거쳐야 하지만 현산은 이를 무시했다.

역보는 내부에 철근을 넣지 않고 콘크리트로만 만들었는데, 이러한 것은 설계 변경을 거치지 않고 무단 시공하려는 '꼼수'로 추정된다.

특히 수십t에 달하는 역보는 모든 시공이 마친 뒤에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둬 향후 입주가 진행된 이후에도 하중 부과가 이어질 수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동바리 미설치'·'역보 무단설치'…경찰, 붕괴 원인으로 지목
◇ 현산 측 본격 소환조사…재하도급 의혹도 수사
구체적인 원인 분석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과실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오면서 원청인 현산의 책임 규명에 수사의 무게가 쏠린다.

현산 측은 앞서 설명한 ▲ 동바리 미설치 ▲ 역보 무단 설치 등을 직접 지시하거나, 협의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를 하청업체 책임으로 미루더라도 현장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경찰은 붕괴의 직접적인 책임자로 현산 현장소장과 직원, 감리, 하청업체 관계자 등 총 10명을 입건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중 현산 관계자들은 5명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 그동안 소환 조사 일정이 미뤄졌지만, 경찰은 오는 26일부터 순차적으로 현산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경찰은 그동안 드러난 과실 의혹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면 적극적인 신병 처리도 검토할 방침이다.

재하도급 의혹에 대한 수사도 시작됐다.

경찰은 별도로 하청업체 대표 1명을 추가 입건하고 재하도급 의혹 규명에 나섰다.

붕괴사고 당시 콘크리트 타설은 철근콘크리트 하청업체 직원들이 아닌 노무 약정서를 체결한 펌프카 장비 업체 직원 8명이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것이 편법 재하도급이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