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의 '독립' 의미 달라…혼선 우려"
법원, 서대문형무소-독립문 사이 '유관순 동상' 설치 불허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가 서대문형무소 인근에 열사의 동상을 설치하려 소송전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이정민 부장판사)는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가 문화재청을 상대로 낸 동상설치 불허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기념사업회는 2020년 7월 서대문형무소가 위치한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 5m70㎝ 높이의 유관순 열사 동상을 세우겠다고 신청했지만 불허 처분을 받았다.

당시 문화재청은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3·1운동 기념탑이 이미 건립되어 있고 특정인의 동상을 설치하는 게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을 이유로 "문화재의 역사문화 환경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념사업회는 문화재청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법원 또한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기념사업회가 동상을 설치하고자 하는 곳은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 사이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며 두 문화재의 역사적 의미가 다른 점을 주된 판단 근거로 꼽았다.

역사적 배경에 따라 서대문형무소는 항일독립운동가 다수가 수감돼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반면 대한제국 당시 건립된 독립문은 중국(당시 청나라)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데, 유관순 열사 동상이 새로 설치될 경우 서로 다른 두 '독립'의 의미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대문구청 또한 "독립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상이한데도 (두 문화재가) 지나치게 인접하여 존재함으로써 역사적 교훈과 가치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동상의 설치로 인해 역사문화환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문화재청 불허 처분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의 100m 이내에 건축물 등을 설치하려면 관할청의 허가가 필요하고, 문화재의 보존·관리에 영향을 미치거나 역사문화환경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기념사업회는 소송과 무관하게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유관순 열사 동상을 서대문독립공원 내 다른 장소에 설치한 상태다.

기념사업회 측은 "열사가 항일독립운동의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입장도 이해되지 않고, 단순히 역사문화 환경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상을 불허한 문화재청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해 소송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