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기업들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고삐를 당기고 있다.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신년사를 통해 끊임 없는 변화를 주문했다. 기술과 자원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환기를 맞아 잠시라도 방심했다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곧바로 뒤처진다는 것이 CEO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해법은 다양했다. 기업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겨낼 ‘밸류체인’ 구축에 나서자는 메시지가 많았다. 고도화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활로를 찾자는 주문도 있었다.
"방심하면 뒤처진다"…도전·혁신 절실하게 외친 CEO들

기업 안팎 경계 허물기 강조

삼성전자는 올해를 맞아 주요 사업을 맡던 대표이사 3인을 모두 교체하며 대대적 변화를 꾀했다. 조직 구조도 달라졌다. 소비자가전(CE)부문과 IT·모바일(IM)부문을 합쳐 완제품 사업을 총괄하는 DX(소비자경험)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완제품을 총괄하는 DX부문 대표는 한종희 부회장이, 반도체부문 대표는 경계현 사장이 맡았다.

한 부회장과 경 사장은 지난 3일 임직원 대상 신년사를 통해 새출발을 선언했다. 두 CEO는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경직된 프로세스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문화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며 “개인의 창의성이 존중받고 누구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민첩한 문화로 바꾸자”고 말했다.

두 CEO는 새해 키워드로 △고객 우선 △수용의 문화 등을 제시했다. 철저히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고객 경험을 끌어올리는 데 힘쓰자는 게 ‘고객 우선’이란 키워드의 핵심이다. ‘수용의 문화’는 조직 간 칸막이를 없애 시너지를 극대화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LG는 ‘고객 경험’ 강화를 내세웠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금까지 LG는 양질의 제품을 잘 만드는 일에 노력해 왔지만 요즘 고객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한다”며 “고객은 제품·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가치 있는 순간들 때문에 감동한다”고 강조했다. LG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든 단계의 여정을 살펴 감동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업 간 연결을 강조한 삼성의 행보와도 맞닿아 있는 메시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목표를 ‘가능성을 고객의 일상으로 실현한다’로 정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새해 메시지를 통해 “올해는 우리가 그동안 기울여 온 노력을 가시화하고, 가능성을 고객의 일상으로 실현하는 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기자동차 체제로 전환을 서두르고 수소 관련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다.

외연 확장·친환경도 ‘화두’

소비자와의 거리가 짧은 전자·자동차 업체들이 제품과 기술 연결을 통한 고객 경험 강화를 외쳤다면 철강, 화학 등 ‘중후장대’ 기업들은 외연 확장과 이를 통한 새로운 밸류체인 구축을 강조하고 나섰다. 세계적인 탄소중립 바람 속에 기존 주력 사업이 변화 요구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인 포스코그룹은 철강을 넘어 친환경 미래 소재 전문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아르헨티나의 염호 리튬 개발을 통한 양적 성장과 그룹 미래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초고용량 전지 소재, 전고체용 소재 등 기술 우위를 강화하겠다”며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 2028년까지 상업 생산 규모의 데모 플랜트를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GS그룹은 외부 스타트업,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지난해에는 국내외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등 60여 건에 이르는 전략적 투자 활동을 벌여 신사업 방향을 구체화했다”며 “이런 생태계 구축이 새해에는 더욱 구체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 임직원 모두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SG 경영에 대한 고민도 기업들의 신년사에 묻어 있었다. SK그룹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탄소 친환경 사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2030년까지 탄소 2억t 감축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제는 기업도 지구와 직접 대화할 때”라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1% 탄소 감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역시 새해 과제 중 하나로 ‘ESG 선도’를 내세웠다. 제품을 잘 만드는 것에 더해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이 되자는 게 삼성전자가 내세운 목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