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part 5. COMPANY] “조절T세포 발을 묶어라!” 한미약품 ‘FLX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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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이 보유한 항암제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은 10여 개. 하지만 이 후보물질 모두가 2세대 표적항암제였다. FLX475는 한미약품이 확보한 첫 면역항암제 후보물질이다.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저해하는 조절T세포를 표적하기 때문에 세계적 블록버스터인 키트루다 등의 면역항암제와 효과적인 병용투여를 기대할 수 있다.
“종양을 면역세포로부터 지키는 파수꾼 역할의 조절T세포를 저해할 수 있는 물질을 국내외에서 샅샅이 찾았습니다. 당장 임상에 나설 수 있는 물질로 랩트테라퓨틱스의 FLX475를 낙점하게 된 거죠.”
이영미 한미약품 R&BD본부 전무는 FLX475의 도입배경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이 전무는 다나-파버 암연구소, 독일 국립암연구소, 동아제약을 거친 뒤 2013년부터 한미약품에서 신약 기술수출 및 도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신약 개발 전문가다.
2019년 한미약품은 선수금 400만 달러(약 47억 원)에 랩트로부터 FLX475를 도입했다. 단계별 기술료는 5400만 달러(640억 원)이며 추후 상용화에 따른 이익을 분배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한미약품은 한국과 중국(대만·홍콩 포함)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확보했다.
이 전무는 “랩트와 암종을 나누어 한미약품은 국내에서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PD-1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와 FLX475를 병용투여하는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종양으로 조절T세포의 이동 막는 FLX475
한미약품이 조절T세포에 관심을 가진 배경은 이렇다. 조절T세포가 종양미세환경(TME) 인근에 많으면 활성화된 면역세포가 많든 적든 암 치료의 예후가 나빴기 때문이다. 본래 조절T세포는 정상 상태에서 면역세포의 과활성을 막아 자가면역질환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종양미세환경 인근에선 면역세포의 활성을 낮춰 되레 종양을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한다.
이 전무는 “혈류를 따라 흐르던 조절T세포는 주화성(chemotaxis)에 의해 종양미세환경으로 끌려가게 되는 데 FLX475는 주화성을 일으키는 케모카인(CCL17/22)이 조절T세포에 붙지 못하도록 하는 수용체 대항체(antagonist)”라고 설명했다. FLX475의 표적은 조절T세포에 있는 CCR4 수용체다. 종양미세환경이 조절T세포를 끌어당기기 위해 분비하는 CCL17이나 CCL22가 CCR4에 붙기 전에 FLX475가 먼저 결합하는 식으로 주화성을 차단한다.
이 전무는 “FLX475가 주화성을 유발하는 종양미세환경의 물질에 비해 친화도(affinity)가 20~30배 더 높다”며 “FLX475는 자체적인 독성이 없고 조절T세포의 이동에만 관여하기 때문에 안정성 측면에서도 우수하다”고 덧붙였다.
FLX475의 적응증은 한미약품이 임상 중인 위암 외에도 랩트가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비소세포폐암, 유방암 등이다. 특히 항암제 반응성이 낮은 ‘콜드 튜머(cold tumor)’ 중에서도 바이오마커 CCR8의 발현이 많은 ‘차지드 튜머(charged tumor)’에서 FLX475가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차지드 튜머란 면역항암 효과를 억제하는 조절T세포와 조절T세포의 종양 내 이동에 관여하는 CCR4, 활성화된 T세포가 모두 많은 암이다. 활성화된 T세포가 충분히 종양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면역을 저해하는 조절T세포만 막으면 콜드 튜머가 ‘핫튜머’로 변할 수 있다. 핫튜머는 면역항암제 반응이 활발한 종양을 말한다.
한미약품이 공개한 일부 임상 결과는 긍정적이지만 아직 투여 환자 수가 적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미약품이 미국 면역항암학회(SITC)에서 발표한 임상 2상 일부 결과에 따르면 EBV 양성, HER2 음성인 80세 위암 남성 환자에게 FLX475를 키트루다와 함께 병용투여했더니 6주기 차에 전이된 종양 크기가 58% 감소하는 부분반응(PR)이 나타났다.
한미약품은 FLX475의 임상을 위해 환자 10명을 모집 중이며, 추후 90명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전무는 “임상에 참여한 환자처럼 EBV에 감염된 위암 환자를 위한 치료법은 아직 없는 상태인 만큼 부분반응을 확인한 것도 고무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덧붙여 “임상 참여 환자 중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중단한 사례도 없다”고 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9월 미국 머크(MSD)와 협력계약을 체결해 FLX475와의 병용투여 임상 2상에 필요한 키트루다를 무상으로 공급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조절T세포 ‘발 묶기’ 위해 뛰어든다
조절T세포를 겨냥한 임상은 한미약품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조절T세포가 종양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데 관여하는 CCR4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론 한미약품과 랩트가 공동 개발 중인 FLX475가 가장 임상 진도가 빠르다.
길리어드는 자운스테라퓨틱스로부터 GS-1811을 도입해 한미약품과 랩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GS-1811 또한 CCR8을 표적으로 하는 수용체 대항체로 키트루다와 병용하는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BMS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는 조절T세포에 있는 다른 수용체 공략에 나섰다. BMS는 CCR2와 CCR5를 표적으로 하는 BMS-813160, CCR8을 표적하는 BMS-986340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조절T세포가 종양미세환경을 향해 이동하는 데 관여하는 수용체들이다.
BMS-813160는 본래 심혈관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이었으나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을 통해 조절T세포 수용체를 표적하는 약물로 변신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티드를 이용해 FOXP3의 mRNA를 조절하는 기전으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FOXP3 또한 조절T세포의 이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무는 “이렇게 많은 크고 작은 제약사들이 조절T세포 관련 치료제를 개발하는 까닭은 항암제 개발에서 조절T세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FLX475가 향후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에서 긍정적인 효능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
“종양을 면역세포로부터 지키는 파수꾼 역할의 조절T세포를 저해할 수 있는 물질을 국내외에서 샅샅이 찾았습니다. 당장 임상에 나설 수 있는 물질로 랩트테라퓨틱스의 FLX475를 낙점하게 된 거죠.”
이영미 한미약품 R&BD본부 전무는 FLX475의 도입배경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이 전무는 다나-파버 암연구소, 독일 국립암연구소, 동아제약을 거친 뒤 2013년부터 한미약품에서 신약 기술수출 및 도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신약 개발 전문가다.
2019년 한미약품은 선수금 400만 달러(약 47억 원)에 랩트로부터 FLX475를 도입했다. 단계별 기술료는 5400만 달러(640억 원)이며 추후 상용화에 따른 이익을 분배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한미약품은 한국과 중국(대만·홍콩 포함)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확보했다.
이 전무는 “랩트와 암종을 나누어 한미약품은 국내에서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PD-1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와 FLX475를 병용투여하는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종양으로 조절T세포의 이동 막는 FLX475
한미약품이 조절T세포에 관심을 가진 배경은 이렇다. 조절T세포가 종양미세환경(TME) 인근에 많으면 활성화된 면역세포가 많든 적든 암 치료의 예후가 나빴기 때문이다. 본래 조절T세포는 정상 상태에서 면역세포의 과활성을 막아 자가면역질환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종양미세환경 인근에선 면역세포의 활성을 낮춰 되레 종양을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한다.
이 전무는 “혈류를 따라 흐르던 조절T세포는 주화성(chemotaxis)에 의해 종양미세환경으로 끌려가게 되는 데 FLX475는 주화성을 일으키는 케모카인(CCL17/22)이 조절T세포에 붙지 못하도록 하는 수용체 대항체(antagonist)”라고 설명했다. FLX475의 표적은 조절T세포에 있는 CCR4 수용체다. 종양미세환경이 조절T세포를 끌어당기기 위해 분비하는 CCL17이나 CCL22가 CCR4에 붙기 전에 FLX475가 먼저 결합하는 식으로 주화성을 차단한다.
이 전무는 “FLX475가 주화성을 유발하는 종양미세환경의 물질에 비해 친화도(affinity)가 20~30배 더 높다”며 “FLX475는 자체적인 독성이 없고 조절T세포의 이동에만 관여하기 때문에 안정성 측면에서도 우수하다”고 덧붙였다.
FLX475의 적응증은 한미약품이 임상 중인 위암 외에도 랩트가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비소세포폐암, 유방암 등이다. 특히 항암제 반응성이 낮은 ‘콜드 튜머(cold tumor)’ 중에서도 바이오마커 CCR8의 발현이 많은 ‘차지드 튜머(charged tumor)’에서 FLX475가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차지드 튜머란 면역항암 효과를 억제하는 조절T세포와 조절T세포의 종양 내 이동에 관여하는 CCR4, 활성화된 T세포가 모두 많은 암이다. 활성화된 T세포가 충분히 종양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면역을 저해하는 조절T세포만 막으면 콜드 튜머가 ‘핫튜머’로 변할 수 있다. 핫튜머는 면역항암제 반응이 활발한 종양을 말한다.
한미약품이 공개한 일부 임상 결과는 긍정적이지만 아직 투여 환자 수가 적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미약품이 미국 면역항암학회(SITC)에서 발표한 임상 2상 일부 결과에 따르면 EBV 양성, HER2 음성인 80세 위암 남성 환자에게 FLX475를 키트루다와 함께 병용투여했더니 6주기 차에 전이된 종양 크기가 58% 감소하는 부분반응(PR)이 나타났다.
한미약품은 FLX475의 임상을 위해 환자 10명을 모집 중이며, 추후 90명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전무는 “임상에 참여한 환자처럼 EBV에 감염된 위암 환자를 위한 치료법은 아직 없는 상태인 만큼 부분반응을 확인한 것도 고무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덧붙여 “임상 참여 환자 중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중단한 사례도 없다”고 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9월 미국 머크(MSD)와 협력계약을 체결해 FLX475와의 병용투여 임상 2상에 필요한 키트루다를 무상으로 공급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조절T세포 ‘발 묶기’ 위해 뛰어든다
조절T세포를 겨냥한 임상은 한미약품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조절T세포가 종양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데 관여하는 CCR4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론 한미약품과 랩트가 공동 개발 중인 FLX475가 가장 임상 진도가 빠르다.
길리어드는 자운스테라퓨틱스로부터 GS-1811을 도입해 한미약품과 랩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GS-1811 또한 CCR8을 표적으로 하는 수용체 대항체로 키트루다와 병용하는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BMS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는 조절T세포에 있는 다른 수용체 공략에 나섰다. BMS는 CCR2와 CCR5를 표적으로 하는 BMS-813160, CCR8을 표적하는 BMS-986340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조절T세포가 종양미세환경을 향해 이동하는 데 관여하는 수용체들이다.
BMS-813160는 본래 심혈관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이었으나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을 통해 조절T세포 수용체를 표적하는 약물로 변신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티드를 이용해 FOXP3의 mRNA를 조절하는 기전으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FOXP3 또한 조절T세포의 이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무는 “이렇게 많은 크고 작은 제약사들이 조절T세포 관련 치료제를 개발하는 까닭은 항암제 개발에서 조절T세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FLX475가 향후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에서 긍정적인 효능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