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뇌전증·파킨슨 치료제 디앤디파마텍 등 속속 임상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파킨슨병 등 퇴행성 신경질환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크게 늘고 있다. 고령인구 증가 추이를 고려할 때 신경질환 치료제 시장이 항암제 못지않은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약·바이오 업계에는 더할 나위 없는 ‘블루오션’ 시장인 셈이다.
질병관리청 임상연구정보서비스(CRIS)에 따르면 지난 12월 23일 현재 국내에 등록된 신경계 질환 임상은 총 49건이다. 신경계 질환은 주로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병, 뇌전증(간질)같이 뇌나 중추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 분야는 2011년만 해도 임상 건수가 3건에 불과했다. 2016년까지도 9건에 그쳤던 임상 건수는 이듬해 14건으로 늘더니 2018년 25건, 2019년 35건으로 증가했다. 2020년에는 39건이 등록됐다. 임상 건수가 10년 새 16배, 5년 새 5배 넘게 급증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연구자 임상으로 진행되고 있고, 아리바이오, 디앤디파마텍 등 바이오벤처들의 임상은 주로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근 관심이 높아졌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치매 치료제 시장은 ‘비인기 종목’으로 통했다. 개발 기간이 워낙 긴데다 난도 자체가 높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왜 발병하는지조차 아직 명확하게 정립된 이론이 없다.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쌓여서일 것이라는 유력한 ‘가설’이 있는 정도다. 이 때문에 신경계 질환 치료제 개발은 항암제와 순환계· 소화계·호흡계 질환 등에 밀려 만년 후순위였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노인 인구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면서 신경계 질환 치료제의 성장성에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2067년 세계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18.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9.1%에서 2배 이상으로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미국 바이오젠의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을 알츠하이머 치료제로는 18년 만에 승인하면서 치료제 개발 경쟁에 불을 댕겼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치료 효과에 논란이 있는 아두헬름을 승인한 것은 그만큼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이 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피부에 붙이고 손가락에 끼면 아픈 곳 알려줘…진단기기 진화
라파스, 피부에 붙여 질병 파악
스카이랩스의 반지형 기기
확진자 건강 원격 모니터링 체외진단 방식이 바뀌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이 잇달아 검사 편의성을 높인 새로운 진단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라파스는 미세바늘을 이용한 바이오센서 개발에 성공해 국내 특허를 취득했다고 지난 12월 29일 발표했다. 라파스는 약물이나 화장품 성분을 미세바늘 형태로 만든 뒤 이를 패치 형태로 피부에 붙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의약품·화장품 개발에 쓰던 이 기술을 진단검사용으로 확장해 미세바늘에 전기가 흐르도록 한 뒤 피부 내 전기신호를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 라파스는 전기 전도율이 높은 고분자 소재를 활용한다. 회사 관계자는 “피부 상태를 확인하거나 특정 질환의 발병 여부를 검사하는 데 미세바늘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새 기회를 찾은 진단업체도 있다. 스카이랩스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과 연계해 손가락에 끼는 의료기기로 코로나19 확진자를 원격 모니터링하는 실증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의 반지 모양 의료기기인 ‘카트원 플러스’는 내부 센서를 이용해 심박수, 심전도는 물론 산소포화도까지 측정 가능하다. 측정된 데이터는 클라우드로 자동 전송된다.
코로나19 감염자는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더라도 호흡 곤란 증상을 즉각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산소포화도를 상시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는 “이번 실증사업으로 유효성을 입증한 뒤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적용 대상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국동은 사람의 날숨에서 바이러스를 포집하는 의료기기로 유럽 CE 인증을 획득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제품 등록도 마쳤다. 이 제품으로 채취한 바이러스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분자진단 기업인 바이오젠텍과 진단키트 공동개발 협약을 맺기도 했다. 날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코로나19 검사가 가능해지면 의료진 대량 검사가 한층 수월해질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대웅제약, 위식도역류 신약 ‘펙수클루’ 국내 판매 허가
대웅제약은 자체 개발한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 루’(성분명 펙수프라잔염산염)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출시 허가를 받았다고 지난 12월 30일 밝혔다.
대웅제약은 건강보험 약가 협상을 거쳐 올해 상반기 펙수클루를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펙수클루는 ‘34호 국산 신약’으로 공식 지정된다.
펙수클루는 위벽에서 위산을 분비하는 양성자 펌프를 차단하는 ‘칼륨 경쟁적 위산 분비 억제제(P-CAB)’ 계열 치료제다. 현재 시장의 주력인 ‘양성자 펌프 억제제(PPI)’에 비해 치료 효과가 빠르고 오래 지속되는 게 강점이다.
임상을 통해 투여 초기부터 주·야간에 관계없이 즉시 가슴 쓰림 증상을 개선시켰다. 특히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비교군인 PPI 계열 ‘에소메프라졸’ 대비 3배 많은 환자에게서 가슴 쓰림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대웅제약은 미국과 중국, 중동, 중남미 등에 현재까지 약 1조1000억 원 규모의 펙수클루 기술수출을 성사시켰다. 회사는 40조 원 규모로 형성돼 있는 세계 위식도역류질환 치 료제 시장도 정조준한다는 계획이다.
K-mRNA 컨소시엄, 코로나백신 임상 착수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을 위해 지난해 6월 발족한 ‘K-mRNA 컨소시엄’이 본격적인 임상 절차에 들어갔다. 컨소시엄에서 임상개발을 맡은 에스티팜은 식품의약품 안전처에 코로나19용 mRNA 백신 후보물질 ‘STP2104’의 임상 1상을 신청했다고 지난 12월 26일 밝혔다.
STP2104는 변형된 뉴클레오시드를 기반으로 설계한 mRNA다. 전달체로는 지질나노입자(LNP)를 썼다. 모더나도 사용한 물질이다. 국내에서 이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시도하는 것은 STP2104가 처음이다. 에스티팜은 식약처의 임상 1상 허가가 나면 올해 1분기에 글로벌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차세대 ‘약물 우체부’ 잡아라… 바이오벤처, 엑소좀 개발 경쟁
엑소좀, 세포 드나들며 신호전달
거부반응 적어 다방면 활용 가능
일리아스바이오 등 연내 임상
엑소코바이오, 생산시설 구축
제놀루션, 암 조기진단 연구도
국내 바이오벤처들이 차세대 약물전달물질로 각광받고 있는 ‘엑소좀’을 활용한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올 상반기 엑소좀 기반 치료제로 임상계획을 신청하는 국내 1호 기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항염증 효과가 있는 신약후보물질 ‘ILB-202’에 대한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올 상반기 호주에서 신청키로 했다. 연내 임상 계획을 승인받고 환자 모집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엑소좀은 몸속 모든 세포에서 나오는 지름 50~200nm(나노미터)의 동그란 입자다. 처음에는 세포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알았지만, 이후 세포 속을 드나들며 신호를 전달하는 ‘우체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 개발 초기단계다. 미국 코디악, 영국 에복스 등 글로벌 기업들도 임상 1상 단계다. 국내 기업들과 개발 속도에서 큰 차이가 없다.
엑소좀 분야의 국내 선두업체인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동물실험을 통해 엑소좀 치료제의 염증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엑소좀은 몸에서 생성된 물질인 만큼 거부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며 “엑소좀에 태울 약물만 바꾸면 암이나 감염성질환 치료제로 변신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국내 업체들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프로스테믹스는 올 상반기 궤양성 대장염을 적응증으로 해외 임상 1상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브렉소젠도 아토피피부염 치료 후보물질로 오는 5, 6월 중 미국에서 임상시험계획을 낼 예정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임상 신청 전 사전 미팅을 앞두고 있다.
위탁개발생산(CDMO)과 암 진단 등 엑소좀으로 다른 사업 기회를 찾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엑소코바이오는 조만간 ‘엑소좀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고 관련 CDMO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충북 오송 6600㎡ 부지에 엑소좀 생산이 가능한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생산시설 구축에 나섰다. 연말 완공이 목표다.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가 상용화되자 관련 CDMO 수요가 폭증한 게 엑소좀에서 재현될 걸로 본 것이다. 현재 국내에 엑소좀에 특화된 GMP 시설은 없다. 해외에선 세계 1위 CDMO 기업인 스위스 론자가 지난해 11월 미국 코디악에서 엑소좀 생산시설을 인수하며 대량생산 채비를 마쳤다.
엑소좀은 차세대 진단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엑소좀은 체내 모든 세포에서 나오는 만큼 검출이 쉬운 편이다. 세포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구성 성분이 다르다는 점에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지표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체외진단 기업인 제놀루션은 지난해 8월 소변에서 엑소좀을 분리하는 기술을 KAIST에서 도입했다. 현재 엑소좀을 이용한 암 조기진단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아이큐어는 피부를 통해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로 엑소좀을 투약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카이노스메드는 엠디뮨에서 엑소좀 기술을 도입해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동물을 대상으로 효능을 평가하는 단계다.
편집=김예나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