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준/사진=제이플로엔터테인먼트
이석준/사진=제이플로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석준은 '뮤덕'(뮤지컬+덕후)들 사이에서는 '대학로 아이돌'로 불린다. 큰 키에 강다니엘과 김요한이 보이는 외모, 여기에 무대를 사로잡는 폭발적인 성량과 풍부한 표정까지 실력과 외모를 겸비했다는 평이다.

이석준이 존 파우스트로 출연 중인 뮤지컬 '더데빌'은 2014년 초연부터 독창적인 무대 두꺼운 팬층을 자랑했던 작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객석을 가득 채울 만큼 대학로 인기 공연으로 꼽힌다.

'더데빌'은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빛의 상징 '엑스-화이트'와 어둠의 상징 '엑스-블랙', 엑스 블랙의 유혹에 사로 잡혀 욕망의 노예가 되는 존 파우스트와 그를 구원하려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 그레첸이 극을 이끈다.

존 파우스트는 전도유망한 월스트리트의 주식 브로커다. 주식 대폭락 시기에 블랙 먼데이로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엑스-블랙과의 계약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을 향해 달려갈수록 인간성은 사라진다. 이석준은 밝은 에너지를 내뿜는 청년부터 어쩔수 없이 욕망에 굴복하며 악마와의 계약에 사인을 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이다.

2017년 DMF 뮤지컬 스타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석준은 이후 뮤지컬 '그리스', '다니엘' 등을 거쳐 지난해 '쓰릴미', '풍월주', '더데빌'까지 연이어 발탁되며 대세로 등극했다.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남자 신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이석준은 "배우는 배우는 사람"이라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다음은 이석준과 일문일답

이석준/사진=제이플로엔터테인먼트
이석준/사진=제이플로엔터테인먼트
‘더데빌’에서 유혹에 사로잡힌 주식 브로커 역을 맡았다. 캐릭터 소개를 해준다면?

제가 맡은 존 파우스트는 전도유망한 월 스트리트의 주식 브로커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주가가 폭락하면서 모든 것을 잃고, 잃어버린 것을 되돌리기 위해 빛과 어둠 사이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인물이죠. 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끝없는 욕심과 갈등을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한 캐릭터로 해석했어요. 그 이중성과 양면성을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연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주식을 하는 편인가?

주식을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기도 해서 선뜻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하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각별히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괴테의 파우스트 원작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다 보니 원작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있었어요.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연출님이 추천해주신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을 보고 갈피를 잡았습니다. 제가 맡은 캐릭터 존이 ‘왜 이런 선택을 반복하는지’, ‘왜 이렇게 고민하는지’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죠. 감정의 폭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선택하고, 또 후회하잖아요.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이 감정을 증폭시켜야만 존의 고뇌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관객들이 어떤 부분을 봐 주길 바라나?

더데빌’을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린 수많은 스태프의 노력을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음악, 조명, 의상 등 무엇하나 빼놓을 것 없이 볼거리가 다양한 뮤지컬이거든요.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의 노력과 스태프들의 숨은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저희가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명의 파우스트 중 이석준만의 파우스트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의 경우에 다른 배우들과의 차별점을 늘 고민합니다. 무대 위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 다른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더데빌’에서 저만의 존 파우스트가 가진 매력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요. 저 역시 흔들렸던 시기가 있었기에 미숙하고 유약한 존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극 초반 파우스트가 멱살끌고 가던데, 그에 대한 부담감도 컸을듯한데 어떻게 준비했고, 관객들이 어떤 부분을 봐주길 바라나.

멱살을 끌고 가는 장면 때문에 부담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작품이 가진 힘이 워낙 강했고, 때문에 작품 자체를 사랑해주는 팬덤이 탄탄했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희로애락,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 미묘한 감정을 과하지 않게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연출님은 물론 함께 연기하는 선후배 동료 배우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 그에 대한 대가 등을 심도 있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뮤지컬 대상 출신으로 크고 작은 작품들을 거쳐왔다. '더데빌'만의 매력이 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작품입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인물의 서사 감정들이 대사를 통해 이루어져 있었다면, ‘더데빌’은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 음악에 더 집중되어 있어 시각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더 과감한 표현을 요구하는 작품이죠.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연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많이 느끼고,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훗날 돌이켜봤을 때, 저를 성장시킨 작품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기, 공연 무대에 오르는 만큼 고충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떤 고충이 있었을까.

우선 관객들을 많이 모실 수 없는 것, 어려운 시기임에도 극장을 찾아주신 관객분들이 마스크를 쓰고 계신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죠. 연기를 하는 입장에선 관객분들이 어떤 장면에서 웃으시는지, 또 어떤 연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지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아주시는 모든 관객분들, 소리없이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무대 한 길만 팠더라. 어떻게 이 일을 꿈꾸게 됐을까.

안양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여느 고등학생들과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학교에서 주최한 뮤지컬 예술제에 참여하게 됐고,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친구들과 동고동락했던 그 시간의 추억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공연 후 커튼콜에서 쏟아지는 함성과 박수 소리에 전율을 느낀 후부터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향해 달려온 것 같습니다. 지금도 팬분들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곤 합니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 하나 될 수 있다는 것, 한 작품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동료들과 함께 합을 맞추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그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뮤지컬 배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지 올해로 3년째다. 그 꿈을 이룬 거 같나?

꿈을 이뤘다는 표현보다는 성장하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게 꿈이니까... 아직 꿈을 이룬 건 아니네요. 하하. 지난 2년동안 저와 함께 울고 웃어주신 팬분들께 너무 감사해요. 제 연기의 원동력이 되어주시는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발전하고 싶어요.

뮤지컬의 매력은 뭔가.

단편적으로는 연기하면서 노래하고, 노래하면서 춤 추고, 춤 추면서 관객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게 뮤지컬의 매력이죠. 관객분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공연장에서 연기를 하다보면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거든요.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아를 찾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또 다른 저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거든요. 예를 들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면면을 연기하는 ‘더데빌’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알게되는 것처럼요.

신인상 후보에 오른 소감은?

솔직히 말씀 드리면 실감이 안 납니다. ‘정말인가?’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얼떨떨해요. 수상과는 상관없이 후보에 오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힘내라는 응원의 당근, 더 열심히 하라는 용기의 채찍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상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심하지 않을 거에요. 저처럼 뮤지컬을 사랑하는 동료 배우가 받게 되는 거니까, 진심으로 축하해줄 거에요. 물론, 제가 받으면 더 좋겠지만요. 하하.

어떤 배우로 성장하고 싶은지

최근 ‘배우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어떤 책에서 이런 문구를 봤어요. ‘배우는 배우다’. 끊임없이 배우는 게 진정한 배우의 길이라는 의미죠. 늘 고민하고, 탐구하고, 연구하는 배움의 연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강다니엘 김요한 닮았다는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네? 정말이요? 제가 그렇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너무 기분 좋은 극찬이죠. 강다니엘 선배님과 김요한 선배님의 활동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는 말인 것 같습니다.

별명이 1999년생이라 '구구'라고. 선배들도 커튼콜 무대 위에서 예뻐하는게 보이더라. 비법이 있을까.

제가 잘해서라기보단 선배님들이 너무 좋으세요. 연기에 대한 열정, 후배를 아끼는 마음은 감히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시거든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 직업을 선택한 게 뿌듯할 정도로 제가 인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고음이 많아서 목관리가 필수일 거 같더라. 평소 공연을 할때 몸 관리 비법이 있나?

목에 좋은 것들을 다 챙겨 먹고 있습니다. 하하. 도라지 배숙을 따뜻하게 해서 먹으면 도움이 되더라고요. 연기를 잘하는 것도 물론 너무 힘들지만 가장 힘든 게 컨디션 관리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뮤지컬 외에 다른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을까.

배우에게 ‘도전’은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죠.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다른 모습을 기대하시는 팬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으려고 해요. 하루 빨리 좋은 소식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