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한 前 홈플러스 회장 "경영자는 둘러 보고, 달리 보고, 깊이 봐야"
“거대 유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살다가 최근 몇 년 작은 가게의 경영자로 살아보니 ‘소상공인 어렵다’는 말이 참 실감 나더군요. ‘보는 곳’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물론 목표와 행동까지 바뀌는 법입니다. 이런 통찰은 함께 나눌수록 더 이득이지요.”

이승한 전 홈플러스 회장(사진)은 국내 유통산업의 역사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를 거쳐 영국 테스코와 합작해 홈플러스를 출범시켰다. 업계 꼴등에서 출발한 홈플러스는 그의 지휘 아래 4년 만에 2위로 올라섰다.

경영 일선에서는 모두 물러났지만 그는 지금도 서울 강남 선릉로 골목길에서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 ‘북새즈’를 운영하고 있는 ‘현역 경영인’이기도 하다. 지난달에는 40년 넘는 경영 생활의 지혜를 담은 책 《시선》을 출간했다. 이 전 회장은 “아내가 그동안 내가 기고했던 글 등을 직접 편집하고 1인 출판사까지 차려서 생일 선물로 마련해준 책”이라며 “경영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더욱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정리해봤다”고 밝혔다. 그를 지난주 북새즈에서 만났다.

《시선》은 이 전 회장이 직접 작성한 ‘통찰을 주는 글’을 정리한 수필집이다. “보는 곳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는 그의 평소 경영철학을 담아 제목을 시선(視線)이라고 지었다. 경영자라면 ‘둘러 보고’ ‘달리 보고’ ‘멀리 보고’ ‘높이 보고’ ‘건너 보고’ ‘깊이 보는’ 여섯 가지 시선을 갖춰야 한다는 게 이 전 회장의 지론이다.

삼성그룹의 주요 직책을 거친 만큼 결정적인 순간들도 담았다. 이 전 회장은 특히 1990년대 초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몸담았을 당시 도곡동 일대에 계획했던 전자 디지털복합단지인 ‘도곡 디지털 파크’가 외환위기 여파로 무산된 게 가장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추진됐다면 세계 반도체·전자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서울의 지형도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섯 가지 시선 중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전 회장은 “둘러 보는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각과 행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어 창의적인 경영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후배 경영인들을 가르칠 때도 이 전 회장은 이런 ‘시선’과 ‘통찰’을 중심으로 강의하곤 한다. 그는 2015년 넥스트앤파트너스를 세워 후배 기업가들을 위한 경영자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다양하다. 대기업 임원, 후계자는 물론 젊은 스타트업 대표까지 그의 제자들이다. 단순한 경영학 수업보다 ‘살아있는 경영’을 중심으로 강의한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회장 출신인 이 전 회장은 3년 전 서울 선릉로 골목길에 복합 문화공간인 북새즈를 열었다.

이 전 회장은 “골목길은 도시의 문화적·경제적 무형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며 “골목길 활성화를 위한 ‘길 포럼’을 만들어보는 것도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