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화과학'서 김내훈 씨 주장…"특정 세력이 이용하기 쉬워"
"20대가 앵무새처럼 외치는 '공정'은 비어 있는 상태"
우리 사회에서 '세대'는 성별이나 계층에 못지않은 중요한 담론 주제로 부상했다.

각종 정치·사회 현상을 분석한 글에는 'MZ세대'를 비롯해 '이대남', '이대녀' 같은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뜻하고, 이대남과 이대녀는 각각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을 의미한다.

언론이나 온라인에서는 이들이 공정을 중시하며 부당한 대우에 분노한다고 으레 지적한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미디어 문화를 전공한 박사과정 연구자인 김내훈 씨는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최신호에 기고한 논고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이 공통으로 한국 사회의 '공정하지 않음'을 성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20대에게 공정이 매우 중요한 화두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20대들이 앵무새처럼 외치는 공정은 무엇인지 합의가 안 돼 있고, 비어 있는 상태여서 그 자체로는 말해주는 바가 전혀 없다"며 "특정 세력에 전유되기 쉽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엇이 공정인가'에 대한 내용이 채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카리스마로 무장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유려한 화법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단순한 메시지로 '공정'을 설파한다면 20대가 열광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대들은 공정이라는 미명하에 사회에서 도태돼야 할 사람들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서 '그들'로 밀어낸다"며 "그들 때문에 뭉친 '우리'는 그들과 비교에서 오는 일말의 상대적 우월감을 붙들고 불안에 대응한다"고 짚었다.

김씨는 "난민, 이주민, 외국인, 비정규직, 빈민 앞에서는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는 20대 남녀가 함께 '우리'로 뭉친다"며 "자신들의 공정에 대한 요구를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386세대, 정부와 여당이 '그들'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의 도발을 유도해 사회 이목을 끌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른바 '프로보커터'에 관한 책을 내놓기도 했다.

'포퓰리즘'을 특집으로 다룬 문화과학 제108호에는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몰락 위기에 처한 대학의 현실을 고찰한 글도 실렸다.

천 교수는 학생 수 감소가 예견된 상황에서 기존의 대학 체제는 한계에 이르러 붕괴하고 있으며, 기초 학문이 쇠퇴하고 교육 체계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국 대학은 폐강 기준을 낮추고 강좌 정원을 줄이는 대신 강의를 통폐합하고 학생들의 졸업 이수 학점을 줄이는 방법으로 대처했다"며 교수와 연구자들이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빠지고 파편화했다고 지적했다.

천 교수는 "연구자들의 학술조직과 대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학에도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강력한 반불평등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