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박규현 씨는 “한 시기를 같이 통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감각을 시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2022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박규현 씨는 “한 시기를 같이 통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감각을 시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2022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박규현 씨(26)는 당선 전화를 받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기쁨의 눈물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굉장히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다시는 시를 못 쓸 거라고 생각했죠. 친구를 생각하며 애도하는 마음으로 쓴 이 시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얘기를 듣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당선작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는 심사위원들로부터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받았다. 랭보처럼 박씨의 시에서도 자폐적이고 착란적인 면모가 엿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의 시는 문장의 뜻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처음 읽을 땐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래서 두세 번 다시 읽게 하는 힘이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는 문예창작과만 거의 10년째다.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와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대학에서도 할 수 있게 됐지만 고민은 깊어졌다. “고등학교 땐 대학 입시란 목표가 있다 보니 무엇을 써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대학 입학 후엔 내가 시로 말하고 싶은 게 뭘까, 오히려 길을 잃었죠. 어느 순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자고요. 제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요.”

심사위원들이 그의 시에서 ‘착란적 비약’이 도드라진다고 했지만 난해함과는 또 다르다. 혼자만의 시가 아닌, 누군가에게 읽히고 이해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하는 그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제 취향은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이라며 “구조가 다층적일 순 있지만 메시지 자체는 하나를 직관적으로 얘기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가 그런 예다. 리치는 세 아이의 엄마였고, 유대인이었고, 레즈비언이었다. 박씨는 “리치의 시는 읽을 때마다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며 “말하고자 하는 바를 힘있게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게 좋고, 나도 그런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또 강조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장면을 그리기’다. 당선작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에서 파쇄기로 들어간 종이는 흰 가루로 변하고, 이는 다시 눈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박씨는 “지난겨울 아르바이트 하던 사무실에서 서류를 파쇄하곤 했다”며 “그때 느꼈던 무력감 같은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예지 본심에 몇 번 오르긴 했지만 신춘문예에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고정관념일 수 있는데 신춘문예와 제 스타일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에게 시란 뭘까. 박씨는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였던 김연아 선수의 말을 빌렸다. “김연아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며 스트레칭을 하느냐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했어요. 저도 시를 쓰는 게 이제는 그냥 하는 것 같아요. 삶의 자장 속에 깊이 들어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제 생활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박씨는 오래오래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한 시기를 같이 통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감각을 시로 쓰고 싶어요.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구나 하고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게요.”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