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보건의료·가족 실태조사에서 성소수자 항목 신설해야"
"트랜스젠더 존재 파악하라"…인권위, 국무총리에 권고 결정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가 되는 각종 통계·실태조사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항목을 포함하도록 내각에 권고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고(故)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처분 등을 계기로 국내 성소수자 차별을 둘러싼 관심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어서 향후 파장이 주목된다.

26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인권위는 지난 23일 제42차 상임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안'을 의결했다.

국무총리가 중앙행정기관과 통계작성 지정기관의 국가승인통계조사, 각 기관의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를 정책 수립 등에 반영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인권위는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장관과 통계청장에게는 각 기관이 진행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존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조사항목을 신설하는 방안을 권고할 예정이다.

인권위가 이번 권고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트랜스젠더 신입생의 여대 입학 포기 사건, 트랜스젠더들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 등에서 보듯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인권위의 실태조사를 제외하면 정부 차원에서 인구학적인 기초 현황을 파악하려는 노력조차 전무했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존재 파악하라"…인권위, 국무총리에 권고 결정
일례로 정부의 정책 기초자료로 활용되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성별을 남녀 두 가지로만 응답할 수 있을 뿐 성별 정체성을 별도로 묻는 항목은 없다.

복지부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 여가부 가족실태조사 등에서도 트랜스젠더 관련 조사항목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해외에선 인구조사에 '제3의 성'을 포괄하려는 시도가 점차 늘고 있다.

캐나다 연방통계청은 올해 인구총조사에서 태어났을 때의 '지정 성별'과 태어난 후의 '성별 정체성' 질문 항목을 포함했으며, 영국 통계청도 성별 정체성 관련 질문지를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인권위는 통계청장에게는 보건 관련 통계 작성에 사용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개정해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분류에서 삭제하는 조치도 함께 권고하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18년 "성별불일치 상태는 더이상 정신장애가 아니다"라면서 트랜스젠더 관련 항목을 정신질환 분류에서 삭제한다고 밝혔으며 이는 내년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 개정판(ICD-11)에 반영됐다.

인권위는 이번 결정문에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집단으로서 가시화해야 하며 우선적으로 실태조사와 통계작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