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TC 지원 요구 관측…'반도체 자급' 활용 의도
해당 조건 위반 땐 반독점법으로 '처리' 예고
中, SK하이닉스에 "경쟁사 시장진입 도와라" 조건 걸어
중국 정부가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승인하면서 '다른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도우라'는 조건을 단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 방향까지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이는 향후 자국 업체가 낸드플래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SK하이닉스가 도움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인수 승인을 지렛대 삼아 자국의 '반도체 자급'을 도모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22일 인수를 승인하면서 6개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 중 '타기업 지원'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총국은 공고에서 "한 개의 제3 경쟁자가 기업급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SSD는 낸드를 이용한 저장 장치로 자기 방식 저장 장치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데 SK하이닉스가 인수하기로 한 중국 다롄(大連) 소재 인텔의 팹(반도체 생산 공장)은 주로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한 SSD를 제조하는 곳이다.

중국은 이번 공고에서 '제3 경쟁자'가 어느 기업이 될 것인지에 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이 미중 '기술 전쟁' 속에서 반도체 자급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중국 기업의 SSD 시장 진출을 도우라는 조건을 단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中, SK하이닉스에 "경쟁사 시장진입 도와라" 조건 걸어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 말고 다른 나라 기업을 도우라고 이런 조항을 넣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한 SSD의 가장 큰 소비처는 대량의 서버가 들어가는 데이터센터다.

중국은 작년부터 경기 부양을 위한 '신 인프라' 차원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적극적으로 독려 중인데 데이터센터 내 서버의 저장 장치로 SSD가 쓰이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중국이 내건 이 조건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중국 기업으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은 '중국의 반도체 항모'로 불리는 칭화유니(淸華紫光) 산하의 낸드 제조사인 YMTC(長江存儲)다.

이 회사는 2019년부터 64단 3D 낸드 기반의 256기가바이트급 낸드 양산을 시작했지만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과 기술 격차가 커 중국 안팎에서 시장 점유율이 미미하다.

게다가 SSD는 일반 낸드보다 더욱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SSD는 양산형 낸드에 데이터 교환 작업을 통제하는 컨트롤러라고 하는 정교한 부품을 결합해 만드는데낸드를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난도가 높은 컨트롤러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SSD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

SK하이닉스 역시 SSD 사업 초기 컨트롤러 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단계에서 중국이 SK하이닉스에 요구한 타사 지원 의무가 어디까지일지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만일 핵심 기술력 이전에 관한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향후 기술 이전 압박 논란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그간 미국은 중국이 인수·합병, 투자 등과 관련해 외국 기업에 강제 기술 이전을 하는 광범위한 관행이 존재했다고 지적했고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 시작의 주된 명분이 되기도 했다.

인텔이 미국 회사라는 점에서 기술 이전 논란이 불거질 경우 미국 역시 이 문제에 관여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당국이 내건 다른 조건들도 자국의 반도체 수급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의 것들로 평가된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 향후 5년간 다롄 공장 생산량 지속 확대 ▲ 승인일 기준 과거 24개월 평균가 이상 판매 금지 ▲ 공평·합리·비차별 원칙으로 중국 시장에서 모든 상품 공급 등 조건을 요구했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승인 조건을 위반할 때는 반독점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 신냉전 속에서 반도체는 중국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손꼽힌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서버에 들어가는 AP와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부터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반도체 제품을 수입에 의존한다.

작년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전년보다 14% 증가한 3천800억 달러(약 453조원)에 달했다.

이는 작년 중국의 전체 수입액 중 약 18%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화웨이(華爲) 제재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공략하면서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 속도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자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자급률을 최소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SMIC 등 여러 반도체 기업들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