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본 현대사 이야기 '숭배 애도 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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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 성대 교수가 쓴 '자살'과 '죽음정치'에 관한 에세이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이탈리아의 철학자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가 한국을 방문한 뒤 쓴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사회의 특징을 언급한 내용이다.
성균관대 국문과 천정환 교수는 최근 출간한 '숭배 애도 적대'(서해문집)에서 "이런 상황을 늦추어야만 자살과 이를 부추기는 광증과 폭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한다.
책은 자살 사건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개괄한 에세이다.
사회 변화와 역사적 사건을 정조준한 수필이기에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천 교수는 민주화운동과 노동 운동 과정에서 무수하게 나타난 "열사의 자결",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정치인의 극단적 선택, 성공한 공무원들의 "분사(憤死)", 우울증 등으로 인한 연예인의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박은 극단적 대결의 정치, 경제적 양극화, SNS '좋아요'로 표상되는 "관종 문화"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1991년 5월에 시작한 '분신 정국'에서 출발한다.
거의 두 달간 전국 각지에서 수천 번의 집회가 열렸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강경대·박승희·김귀정 등 젊은 '열사'들의 죽음이 잇따랐다.
이들은 민주화로 가는 길에 자기 목숨을 제물(祭物)로 내놓고자 하는 것, 죽음으로써 진실을 지키거나 알리고자 하는 것, 한계에 달한 자기의 인식과 역능(力能)을 죽음으로써 반성하거나 돌파하고자 하는 것 등의 이유로 자살을 택하거나 혹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졌다고 저자는 밝힌다.
특히 숨진 이들 가운데 20대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는 "죽어버린 젊은 삶은 짧은 생애를 완전히 연소시켜 최상급의 열정과 심혼을 기울여 살다 갔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또한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부끄러움이라는 인장을 새겨넣었다.
저자는 "열사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그것을 직접 목도하거나 체험하는 자들에게 가장 극적인 도덕적 고양을 이루게 할 뿐 아니라, 아예 도덕적인 퇴로를 차단하는 공포와 숭고의 기획"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의 이 같은 '열사의 정치학'이 "전태일의 표상을 기점으로 하고, 5·18 광주라는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와 1980년대 대학생들의 희생에 의해 확대되고 사회화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제 정치권 586세대 주류의 정신적·정치적 타락과 함께 '민주화'라는 테제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갔듯, 열사의 정치학도 현재적인 윤리적·정치적 자원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지난 40년 세월 동안 점점 '양식화'되고 '화석화'되어 왔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애도와 거대 정당의 정치적 적대행위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애도의 역사는 한국 정치의 감정구조 그 자체로서, 시기에 따라 내용이 변해왔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두 가지 계열의 극단적 감정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데, 하나는 "노무현과 그 정치에 대한 조롱·혐오·공포이며 다른 하나는 죄의식·우상화·애도를 이용하기"다.
서울 명문대 출신의 보수 엘리트들, 즉 "특권 동맹"은 고졸 출신 노 전 대통령의 등장에 혐오를 넘어 공포감까지 느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왼쪽 깜빡이를 켠 채 계속 오른쪽으로 갔던' 정책을 펴도 이런 혐오와 공포감은 줄지 않았다.
반면, '친노' 정치 세력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우상화하고, 시민의 애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사람 사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노무현 정신의 핵심일 텐데, 그 정신을 이어나가기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그의 죽음을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횡령된 애도" "박제된 애도"라 비판한다.
그는 "이른바 보수는 '친노' 또는 '친문'의 감정 정치를 증오나 공포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일부는 '일베' 등과 같이 비루한 조롱으로 대응해 왔다"며 "적대하는 진영이 서로를 재생산하며 악순환을 이어온 과정은 한국 정치 문화의 한계 그 자체"라고 지적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고위 공직자의 자살을 살펴보며 그들의 죽음은 목숨을 버림으로써 억울함이나 결백을 증명하고 자신의 도덕성을 타인과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 증명하고 호소하고자 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설리· 종현 등 유명인들의 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별점'과 '관종의 시대'에 내적 자아는 위험과 불안·초조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400쪽. 1만7천원. /연합뉴스
이탈리아의 철학자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가 한국을 방문한 뒤 쓴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사회의 특징을 언급한 내용이다.
성균관대 국문과 천정환 교수는 최근 출간한 '숭배 애도 적대'(서해문집)에서 "이런 상황을 늦추어야만 자살과 이를 부추기는 광증과 폭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한다.
책은 자살 사건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개괄한 에세이다.
사회 변화와 역사적 사건을 정조준한 수필이기에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천 교수는 민주화운동과 노동 운동 과정에서 무수하게 나타난 "열사의 자결",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정치인의 극단적 선택, 성공한 공무원들의 "분사(憤死)", 우울증 등으로 인한 연예인의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박은 극단적 대결의 정치, 경제적 양극화, SNS '좋아요'로 표상되는 "관종 문화"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1991년 5월에 시작한 '분신 정국'에서 출발한다.
거의 두 달간 전국 각지에서 수천 번의 집회가 열렸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강경대·박승희·김귀정 등 젊은 '열사'들의 죽음이 잇따랐다.
이들은 민주화로 가는 길에 자기 목숨을 제물(祭物)로 내놓고자 하는 것, 죽음으로써 진실을 지키거나 알리고자 하는 것, 한계에 달한 자기의 인식과 역능(力能)을 죽음으로써 반성하거나 돌파하고자 하는 것 등의 이유로 자살을 택하거나 혹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졌다고 저자는 밝힌다.
특히 숨진 이들 가운데 20대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는 "죽어버린 젊은 삶은 짧은 생애를 완전히 연소시켜 최상급의 열정과 심혼을 기울여 살다 갔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또한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부끄러움이라는 인장을 새겨넣었다.
저자는 "열사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그것을 직접 목도하거나 체험하는 자들에게 가장 극적인 도덕적 고양을 이루게 할 뿐 아니라, 아예 도덕적인 퇴로를 차단하는 공포와 숭고의 기획"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의 이 같은 '열사의 정치학'이 "전태일의 표상을 기점으로 하고, 5·18 광주라는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와 1980년대 대학생들의 희생에 의해 확대되고 사회화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제 정치권 586세대 주류의 정신적·정치적 타락과 함께 '민주화'라는 테제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갔듯, 열사의 정치학도 현재적인 윤리적·정치적 자원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지난 40년 세월 동안 점점 '양식화'되고 '화석화'되어 왔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애도와 거대 정당의 정치적 적대행위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애도의 역사는 한국 정치의 감정구조 그 자체로서, 시기에 따라 내용이 변해왔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두 가지 계열의 극단적 감정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데, 하나는 "노무현과 그 정치에 대한 조롱·혐오·공포이며 다른 하나는 죄의식·우상화·애도를 이용하기"다.
서울 명문대 출신의 보수 엘리트들, 즉 "특권 동맹"은 고졸 출신 노 전 대통령의 등장에 혐오를 넘어 공포감까지 느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왼쪽 깜빡이를 켠 채 계속 오른쪽으로 갔던' 정책을 펴도 이런 혐오와 공포감은 줄지 않았다.
반면, '친노' 정치 세력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우상화하고, 시민의 애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사람 사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노무현 정신의 핵심일 텐데, 그 정신을 이어나가기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그의 죽음을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횡령된 애도" "박제된 애도"라 비판한다.
그는 "이른바 보수는 '친노' 또는 '친문'의 감정 정치를 증오나 공포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일부는 '일베' 등과 같이 비루한 조롱으로 대응해 왔다"며 "적대하는 진영이 서로를 재생산하며 악순환을 이어온 과정은 한국 정치 문화의 한계 그 자체"라고 지적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고위 공직자의 자살을 살펴보며 그들의 죽음은 목숨을 버림으로써 억울함이나 결백을 증명하고 자신의 도덕성을 타인과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 증명하고 호소하고자 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설리· 종현 등 유명인들의 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별점'과 '관종의 시대'에 내적 자아는 위험과 불안·초조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400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