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저 투표율…민주진영 불참하고 '무투표' 저항
"한쪽엔 후보자와 노년층 유권자 있고 다른 쪽엔 나들이 간 젊은층"
"체제에 대한 불신임…입법회 정통성 문제"
홍콩입법회 中 각본대로…친중 89석 vs 중도 1석(종합2보)
중국이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기조로 홍콩의 선거제를 전면 개편한 후 처음 실시된 입법회(의회) 선거가 30.2%라는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예정대로' 친중 진영이 단 1석을 제외하고 90석 의석을 휩쓸었다.

이로써 중국은 지난해 홍콩국가보안법 제정에 이어 선거제 개편으로 홍콩의 정치권에서 반대파의 목소리를 제거하게 됐다.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놀라 홍콩 손보기에 나선 중국이 직접 설계한 대로 '홍콩의 중국화'를 착착 밀어붙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실시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30.2%를 기록했다.

전체 유권자 447만2천863명 중 총 135만680명이 참여했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역대 입법회 선거 최저 투표율이다.

사상 최고치였던 직전 2016년 9월 선거 투표율(58.29%)의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입법회 첫 직접 선거가 실시된 1991년의 투표율(39%)보다도 낮다.

총 153명이 출마한 선거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뽑는 10개 지역구 의원 20명, 관련 업계 간접선거로 뽑는 직능 대표 의원 30명, 선거인단(선거위원회)이 뽑는 의원 40명 등 총 90명의 의원을 뽑았다.

이중 친중 진영이 장악한 1천500명 규모 선거인단이 뽑는 의원 선거가 투표율 98%를 기록하며 이날 오전 3시께 당선자를 발표했다.

이어 지역구 20석 역시 친중 진영이 싹쓸이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개 지역구에 출마한 중도성향 혹은 친정부 진영이 아닌 후보 11명 전원이 큰 표차로 패했다"고 전했다.

다만 직능 대표 의원 선거에서 중도파 틱치연(狄志遠) 후보가 당선돼 이번 입법회 유일의 비(非) 친중 진영 의원이 됐다고 SCMP는 전했다.

홍콩에서는 친중파를 '건제파'(建制派)로 부른다.

틱 당선자는 명보에 "90석의 의회에서 1대 89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면서 "비 건제파의 길은 쉽지 않겠지만 입법회에서 최선을 다해 대중에게 내가 지지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입법회 中 각본대로…친중 89석 vs 중도 1석(종합2보)
이번 선거는 애초 당선자보다 투표율에 관심이 쏠렸다.

범민주진영에서 자격심사위원회 설치와 직선출 의석수가 35석에서 20석으로 축소된 것 등에 반발해 아무도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선거에 대한 관심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주요 민주진영 인사들이 대부분 2019년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기소되거나 실형을 살고 있는 데다, 출마를 희망해도 정부 관리들로 꾸려진 자격심사위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야권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민주진영 지지자들은 뽑을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친중진영 지지자들은 야권과 경쟁이 없다는 이유로 과거 만큼 입법회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홍콩 언론은 풀이했다.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과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에서 촉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끌었던 민주진영이 선거에 불참하면서 출발부터 반쪽짜리였던 선거는 중국의 홍콩 통치 체제 방식에 대한 민심을 표출하는 기회로 여겨졌다.

해외로 도피한 민주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선거제 개편에 항의해 투표 보이콧과 백지투표 운동이 벌어지면서 투표율이 과연 얼마나 나올 것이냐에 관심이 쏠렸다.

SCMP는 "한쪽 세계에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와 대부분 노년층인 유권자가 있고, 다른 한쪽 세계에는 선거 당일 무료로 운행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나들이 나간 젊은층이 있었다"며 "홍콩 사회가 입법회 선거일 두 개의 평행 우주로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는 입법회의 정통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케네스 찬(陳家洛) 홍콩 침례대 부교수는 명보에 "투표율이 역대 최저인 30%에 불과한 것은 이번 총선의 공신력과 입법회의 정통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낮은 투표율은 체제에 대한 불신임"이라고 분석했다.

여론조사기관 홍콩민의연구소의 청킴화(鍾劍華) 부총재는 SCMP에 "많은 홍콩인이 후보의 얼굴이나 이름조차 모른다"며 "그들이 당선된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대중을 대표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자신을 중도파라고 홍보하며 이번 선거에 나선 프레데릭 펑은 홍콩 공영방송 RTHK에 "입법회는 한가지 목소리로 채워질 것이며,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인권 등에 대해 대변할 목소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건제파들이 휩쓸었지만, 그들의 영향력도 예전만 같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반 초이(蔡子强) 홍콩중문대 정치행정학 선임 강사는 "중국 정부가 직선 의석수를 줄인 것은 어느 한당이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입법회 내 조정 활동은 중국 정부의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이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이날 내놓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아래 홍콩의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백서에서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주도 아래 국가안전을 지키는 법률을 마련하고 선거제도를 보완해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 원칙을 확고히 실현했다고 강조했다.

백서는 "이런 조치는 홍콩의 정세를 혼란에서 질서로 전환했고, 홍콩의 민주주의 발전을 다시 정확한 궤도로 돌아가도록 했다"고 자평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