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개최…공급망 등 의제는 대부분 대중견제 함의
중국 피해 현실화하면 미중간 줄타기해 온 정부 부담도 더 커질 듯
중국 언급도 없었지만…미국, 경제포위망 구축에 한국 역할 강조
미국이 17일 한국과의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서 중국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대(對)중국 경제 포위망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요구해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SED에서 간접적으로라도 중국에 대한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미 간 협력 강화 방안에 강조점이 찍혔기 때문에 중국 얘기를 할 여지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미국 대표단을 이끈 호세 페르난데스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차관도 방한 기간 내내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

한중 경제관계나 수출 통제 이니셔티브 등 중국 관련 질문에는 "내 직무(portfolio)는 경제"라며 언급을 피했다.

한미 모두 SED에서 공급망 재편과 인프라 투자 등에 있어 양국 간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데 주력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논의의 상당 부분은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촘촘한 포위망 구축의 성격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국 언급도 없었지만…미국, 경제포위망 구축에 한국 역할 강조
핵심 의제였던 공급망 재편은 결국 미국이 동맹국 위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자는 게 목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지난 6월 공급망 차질 대응 '100일 보고서'를 통해 검토한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핵심광물, 의약 등 4개 분야의 공급망 강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항목들이다.

내년에 미국이 공급망 회복이 필요한 6개 분야를 추가 선정해 보고서를 내면 한국은 해당 분야에서의 협력방안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 분야 협의 과정에서는 '오픈 랜'(Open-RAN) 기술을 활용한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네트워크가 거듭 강조됐다.

'오픈 랜'은 미국이 화웨이(華爲) 등 중국 기업의 5세대 이동통신(5G) 제품에 대한 대안으로 육성하는 기술로 평가된다.

중국 언급도 없었지만…미국, 경제포위망 구축에 한국 역할 강조
인프라 투자 협력 역시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진행하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온 데 제동을 거는 성격으로 풀이된다.

일대일로의 경우 환경 파괴나 부패 스캔들, 노동권 위반 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온 만큼 미국은 재정 투명성과 환경 등을 고려한 양질의 인프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맹의 동참을 촉구해왔다.

한미는 이미 구체적인 인프라 투자 협력 프로젝트를 정하고 이행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과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의 개발 협력사업도 계속 발굴하기로 했다.

하나같이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슈들로, 인도·태평양(인태)의 핵심 동맹인 한국이 대중 견제 포위망 구축을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페르난데스 차관은 이날 SED 모두발언에서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언급하며 "한국이 훨씬 더 할 일이 많다고 굳게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런 협의 의제들은 미국이 중국 견제의 큰 틀로 구상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이하 IPEF)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이미 한국의 IPEF 동참을 요청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공급망 안정과 인프라 협력, 탈 탄소, 수출통제, 투자신탁 등 IPEF에 포함된 부분이 SED 의제에도 다 포함된 내용"이라며 한미 간에는 이미 IPEF에서 다뤄질 의제보다 훨씬 심화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그간 크게 보면 미국과는 안보, 중국과는 경제라는 관점을 갖고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지만, 점점 경제와 안보를 떼어놓고 보기 힘든 국면으로 전개되면서 우리 정부의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공급망 재편이나 인프라 투자 등이 더욱 구체화하고 직접적인 중국의 피해가 현실화하는 상황으로 전개되면 한국의 입장이 상당히 곤혹스러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 언급도 없었지만…미국, 경제포위망 구축에 한국 역할 강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