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太宗)이라는 묘호(廟號)보다 이방원이라는 이름 석 자가 훨씬 친숙하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격살하고 조선의 개국을 주도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이복형제를 주살한 뒤 왕위를 찬탈한 이 문제적 인물의 이미지는 다면적이다. 눈 하나 깜짝 않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든 채 궁궐을 활보할 것만 같은 권력욕의 화신이자 세종 시대 태평성대의 기반을 다진 유교 군주로서의 양면성이 공존한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리더로서 그의 진면모는 과연 무엇일까.
[책마을] 권력의 본질 간파한 '승부사' 이방원
《태종처럼 승부하라》는 조선의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의 생애를 되짚어 보면서 조선을 건국하고 왕조를 반석 위에 올린 리더십을 속속들이 해부한 책이다. 권력을 쟁취하고 권위를 창출해나간 과정을 꼼꼼하게 복기했다. 《건국의 정치》(김영수 지음), 《한국정치의 역사적 기원》(진덕규 지음), 《정치가 정도전》(최상용 외 지음) 같은 책들처럼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격변기를 역학관계 변화에 민감한 정치학자의 시선에서 분석했다.

[책마을] 권력의 본질 간파한 '승부사' 이방원
‘권력’은 이방원의 일생을 관통한 화두였다. 고려를 배반하고 험한 북방을 떠돌았던 가문의 내력은 자연스럽게 권력의 본질에 눈을 뜨게 했다. 정의나 규범보다 힘이 중시되고,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이 절로 몸에 뱄다. 신체적 전투 능력뿐 아니라 전략적 사고, 전술적 상황 판단, 난관을 돌파하는 과감한 의지력이 샘솟듯 솟아났다. ‘힘의 원리’를 영민한 이방원은 일찍부터 깨우치고, 내면에 깊이 각인했다.

이방원의 생존 본능, 빠른 판단력이 십분 발휘된 때는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정했을 때였다. 당시 개경에 머물던 이방원은 최영 일파에게 가족들이 인질로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저 없이 두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이끌고 가문의 근거지인 동북면 함흥을 향해 야반도주했다.

그는 냉철한 현실 정치인이었다. 생존을 위해 항시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방원은 정몽주가 자신의 가문을 위협하자 그를 암살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성계의 뜻에 반해 밀어붙인 선죽교에서의 테러는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에 나선 첫걸음이었다. 그는 정치적 폭력을 사용하는 데 소극적이던 부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유형이었다. 혁명가 이방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무엇보다 이방원은 대담한 승부사였다.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도박에 수시로 목숨을 걸었다. 그가 주도해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조선의 문을 열었다. 이복동생 이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자 소수의 측근을 이끌고 ‘왕자의 난’을 감행했다. 당시 거사에 행동요원으로 참여한 것은 사병 혁파를 피해 숨겨둔 기병 10명, 보병 9명, 몽둥이를 든 하인 10명 등 29명에 불과했다. 그는 군사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과감한 한 방으로 순식간에 정국을 반전시켰다.

한 번 쥔 권력은 절대로 내놓지 않았다. 아버지를 상왕으로 물리고, 형을 허수아비 왕으로 앉힌 뒤엔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을 직접 다뤘다. 은밀히 함정을 파놓고 신하들이 걸려들기를 기다렸다가 가차 없이 처단하는 술치(術治)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유신의 교화(維新之化)를 표방하며 자신이 유교적 원리를 수행할 적임자라고 내세웠다. 수시로 왕위를 세자에게 넘긴다는 전위 명령을 내며 신하들의 충성 경쟁을 유발했다.

태종은 끝까지 자신만을 위해 산 이기주의자이기도 했다. 세자에 대한 교육은 일방적 편달(鞭撻) 일색이었다. 세자인 양녕대군이 자신의 ‘성군 놀이’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자 주저 없이 충녕대군으로 후계자를 갈아치웠다. 52세 때 세종에게 양위한 뒤엔 죽을 때까지 상왕 정치를 이어갔다. 왕위는 물려줬으되 군사권과 인사권은 계속 틀어쥐었다. 오늘날 창경궁 자리에 수강궁을 세우곤 이곳에서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세종은 수강궁으로 가서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을 상의했고, 대신들도 수강궁에서 상왕의 지시를 받았다.

이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장악했고, 이를 무자비하게 유지했던 태종을 저자는 ‘정치적 리얼리스트’라고 부른다. 찬탈한 권력이 정치적 영광으로 끝맺었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치가로도 평가한다. 하지만 책이 묘사하는 이방원의 모습은 모범적인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느낌이다. 그를 정치가다운 정치가로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리얼리스트’보다는 ‘에고이스트’가 그를 정의하는 더 적합한 명칭이 아닐까 싶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