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당연한 하루는 없다' 출간한 희우 씨

"대체 왜? 왜 나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투석을 받아야만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희우(28) 씨의 머릿속에는 이런 원망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루푸스가 그의 삶에 찾아온 건 고2 때였다.

눈이 자주 붓고, 머리카락이 빠졌다.

두통도 심했다.

동네 병원을 전전했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동네 내과의 추천으로 대학병원에 갔고, "온갖 검사를 다 받은 후" 루푸스병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많이 놀라셨지만 저는 그렇게 위험한 병인지 잘 몰랐어요.

그저 빨리 퇴원하고 싶었죠."
희우 씨는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에세이 '당연한 하루는 없다'(수오서재)를 최근 출간했다.

고교 때 전교 1등을 했고, 서울대를 진학한 그가 병을 얻고 깨달은 바를 기록한 책이다.

투병하며 전교 1등·서울대…"건강·사랑만큼 소중한 건 없어요"
루푸스는 면역세포가 자신의 장기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면역세포는 희우 씨의 신장을 주로 공격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약을 꾸준히 먹고, 한 달에 한 번만 병원에 가면 되는 정도였다.

피곤과 직결되는 장기인 신장과 관련 있는 병이어서 하루에 3~4시간 공부가 그에겐 최선이었다.

의사는 '공부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권고했지만, 10대란 쉽게 멈출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했고, 2012년 목표로 했던 서울대 인문계열에 들어갔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대학 생활도 이어갈 수 있었다.

2016년에는 덴마크로 한 학기 동안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증상은 호전됐고, 의사의 진단도 긍정적이었다.

이제 완치가 손안에 잡히는 것 같았다.

로스쿨도 준비했다.

우울했던 미래는 이제 끝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희망은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방비가 가장 허술할 때, 인생은 카운터펀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2017년 갑자기 배에 통증을 느낀 그는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모르는 사이, 신장은 망가져 있었고, 배에는 복수가 찼다.

"지난 검사에서 신장 수치는 정상 범주였는데, 그 수치가 갑자기 낮아졌어요.

신장 세포가 저도 모르게 무리하고 있었나 봐요.

한도를 넘으니 순식간에 망가지더군요.

당시 요독이 심한데다 메스꺼워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죠. 약과 주사도 잘 듣지 않아, 루푸스에 효과적이라는 항암치료까지 받았습니다.

"
투병하며 전교 1등·서울대…"건강·사랑만큼 소중한 건 없어요"
신장 기능은 갈수록 떨어져 갔다.

2019년 10월에는 신장 기능이 5%밖에 남지 않아 복막투석을 시작해야 했다.

일상은 투석 위주로 돌아갔다.

여섯 시간마다 투석액을 갈아줘야 했다.

불편했지만, 그래도 삶을 이어나갈 순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 투석을 하며 버텼다.

다행히 동생의 신장이 맞아 신장이식을 할 수 있었다.

2020년 10월 말 수술에 성공했고, 현재까지도 경과는 좋다고 한다.

그는 한때 "명예욕도 성공욕도" 있었다고 했다.

"고생하신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생각도 강했다고 한다.

"늘 달려가는 친구들의 뒷모습만 바라봐야 하는 점"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투석까지 경험하고 나서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뼈마디가 아파도 새벽까지 공부했던 자신을 탓하고, 대충 끼니를 때우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병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가족들에게 미안했고요.

신장이식을 앞두고는 동생의 희생을 바탕으로 건강을 되찾는 나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몸으로 사느니 차라리 내일 눈이 떠지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기도 했죠."
그는 "이제 삶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며 "예전에 성취만 보고 달려왔다면 지금은 아프지 않은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지금 행정대학원에서 장애인 복지 쪽을 공부하고 있는데, 계속 관련 학문을 연구하면서 글도 쓰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수오서재. 208쪽. 1만3천500원.
투병하며 전교 1등·서울대…"건강·사랑만큼 소중한 건 없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