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양반가 편지와 유학자 일기로 본 조선시대 생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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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연구서 '함벽당 간찰'·'모당일기'
조선이 남긴 기록물인 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상세하고 방대하지만, 주로 조정에서 벌어진 일을 다뤄 지방에서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생활사 연구에는 오히려 당대 사람들이 진솔한 필치로 쓴 편지나 일기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암(眉巖) 유희춘(1513∼1577)이 작성한 '미암일기'는 오래전부터 의미 있는 사료로 주목받아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기획하고 은행나무가 펴낸 '함벽당 간찰'과 '모당일기'는 각각 안동 양반가인 함벽당(涵碧堂) 편지 834점과 대구에 거주한 유학자 모당(慕堂) 손처눌(1553∼1634)이 지은 '모당일기'를 분석한 책이다.
함벽당은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집으로, 류경시가 소유한 뒤 전주류씨가 대대로 살았다.
이곳에는 약 250년간 집안사람들과 주고받은 다양한 주제의 편지가 전한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함벽당 간찰(簡札·편지) 내용을 관혼상제 통지, 농사일과 노비 등에 관한 일, 독서와 공부, 관직 제수와 승진, 전염병과 자연재해 대처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조선 후기에 간찰은 소소한 일부터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일까지 여러 가지 사안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며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하소연은 공문서보다는 사문서인 간찰에 더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고 강조한다.
김명자 경북대 강사는 함벽당 간찰을 보면 이 집안의 관계망 형성에 결혼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짚는다.
김 강사는 "전주류씨 함벽당은 안동권씨와 혼인한 이후 안동 서부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며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함벽당 관계망의 범위가 영남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영남 남인의 일반적 경향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모당일기는 손처눌이 1600년 1월 8일부터 1630년 1월 무렵까지 쓴 글을 모은 자료다.
손처눌은 17세기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알려졌으며, 경북 성주 출신인 한강(寒岡) 정구의 학맥을 이었다고 평가된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모당일기를 통해 당시 주자가 가정 예절에 대해 정리한 '주자가례'를 준수하려는 태도가 강하게 나타났으나, 부계 친족 원리가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과도기 양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모당일기에는 기제사(忌祭祀·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와 생신제(生辰祭·망자의 생일에 드리는 제사)에 관한 내용이 기록됐는데, 조부모와 부모는 물론 외조모·장인·장모 기제사도 등장한다.
김 위원은 "손처눌의 30년 일상은 대부분 정형화된 패턴에 따라 전개됐다"며 "특히 사당 참배와 기제사 등의 의례 활동과 성리학 경전을 읽는 독서 활동은 정기적으로 실행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보편적인 일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함벽당 간찰 276쪽. 모당일기 244쪽. 각권 1만8천 원.
/연합뉴스

생활사 연구에는 오히려 당대 사람들이 진솔한 필치로 쓴 편지나 일기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암(眉巖) 유희춘(1513∼1577)이 작성한 '미암일기'는 오래전부터 의미 있는 사료로 주목받아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기획하고 은행나무가 펴낸 '함벽당 간찰'과 '모당일기'는 각각 안동 양반가인 함벽당(涵碧堂) 편지 834점과 대구에 거주한 유학자 모당(慕堂) 손처눌(1553∼1634)이 지은 '모당일기'를 분석한 책이다.
함벽당은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집으로, 류경시가 소유한 뒤 전주류씨가 대대로 살았다.
이곳에는 약 250년간 집안사람들과 주고받은 다양한 주제의 편지가 전한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함벽당 간찰(簡札·편지) 내용을 관혼상제 통지, 농사일과 노비 등에 관한 일, 독서와 공부, 관직 제수와 승진, 전염병과 자연재해 대처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조선 후기에 간찰은 소소한 일부터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일까지 여러 가지 사안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며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하소연은 공문서보다는 사문서인 간찰에 더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고 강조한다.
김명자 경북대 강사는 함벽당 간찰을 보면 이 집안의 관계망 형성에 결혼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짚는다.
김 강사는 "전주류씨 함벽당은 안동권씨와 혼인한 이후 안동 서부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며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함벽당 관계망의 범위가 영남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영남 남인의 일반적 경향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모당일기는 손처눌이 1600년 1월 8일부터 1630년 1월 무렵까지 쓴 글을 모은 자료다.
손처눌은 17세기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알려졌으며, 경북 성주 출신인 한강(寒岡) 정구의 학맥을 이었다고 평가된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모당일기를 통해 당시 주자가 가정 예절에 대해 정리한 '주자가례'를 준수하려는 태도가 강하게 나타났으나, 부계 친족 원리가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과도기 양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모당일기에는 기제사(忌祭祀·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와 생신제(生辰祭·망자의 생일에 드리는 제사)에 관한 내용이 기록됐는데, 조부모와 부모는 물론 외조모·장인·장모 기제사도 등장한다.
김 위원은 "손처눌의 30년 일상은 대부분 정형화된 패턴에 따라 전개됐다"며 "특히 사당 참배와 기제사 등의 의례 활동과 성리학 경전을 읽는 독서 활동은 정기적으로 실행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보편적인 일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함벽당 간찰 276쪽. 모당일기 244쪽. 각권 1만8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