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과 '약 광고'로 살핀 일제강점기 기기묘묘한 사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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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미신의 연대기'·'이 약 한번 잡숴 봐!'
불과 100년 전 무렵이지만, 세상은 상당히 많이 달랐던 듯하다.
발달한 과학기술을 누리는 현대인의 시선으로 당시 사회를 보면 기이하면서도 흥미로운 요소가 적지 않다.
인문학자들이 최근 잇따라 펴낸 책 '미신의 연대기'와 '이 약 한번 잡숴 봐!'는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각각 미신과 약 광고라는 틀로 들여다본다.
모두 신문에 실린 기사와 광고를 활용한 연구 성과물이다.
철학을 전공한 이창익 박사가 쓴 '미신의 연대기'에 등장하는 사례는 매우 충격적이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시작은 1935년 여름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초복과 중복이 지나도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가물었다.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됐다.
한 노인의 말에 따라 여성들이 산에 올랐다.
일부는 몰래 묻힌 시신을 찾고, 다른 무리는 집단 방뇨를 했다.
비를 기원하며 행한 여성들의 집단 방뇨는 비슷한 시기 곡성에서도 벌어졌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스러운 장소가 오염되면 오염물을 씻어내기 위해 신성한 힘이 저절로 작동해 비를 내릴 것이라는 믿음이 내재해 있었다"고 분석한다.
나병을 앓는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인육을 먹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신체 일부를 섭취해야 병이 낫는다는 강한 믿음이 퍼져 있었다.
어린아이를 살해하거나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는 사건도 발생했다.
저자는 나병 환자들이 저지른 잔혹한 사건이 신문에 연이어 보도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짚는다.
그는 "수많은 인육 포식 사건은 나환자를 일상 공간에서 제거하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구실이었다"며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을 격리한다는데 누가 찬성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미신의 백미는 요사스러운 종교인 사교(邪敎)이자 사이비종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백백교'(白白敎)였다.
백백교는 전정운이 창설했다고 전하는데, 그는 자신을 '춘하추동'이 아닌 '동추하춘'의 사람이라고 했다.
동추하춘에는 계절과 시간을 거스른다는 의미가 담겼다.
전정운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차남 전용해가 교주를 맡았다.
그는 측근을 통해 포교를 지속하면서 여성을 첩으로 삼고 재산을 빼앗았다.
이러한 행태가 탄로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피해자는 346명으로 추산됐다.
저자는 "당대의 유사종교는 정치와 종교 사이의 경계선을 마음껏 횡단하면서 종교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가능성에 닿으려 했다"며 "우리가 망상이라 비난하는 유사종교에 인생을 쏟아부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적 상황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어 "미신 자료 연구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엉뚱하고 황당하고 무지몽매한 세계에서 살았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신적 믿음이라도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었던 세계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약 한번 잡숴 봐!'는 노동사와 생활사를 연구하는 최규진 청암대 연구교수가 일제강점기 신문에 등장하는 의약품 광고를 풍부하게 소개한 책이다.
도판 자료를 많이 실어 자료집 같은 느낌을 주지만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다.
일례가 오늘날에도 유명한 '정로환'(征露丸)으로, 이 약의 명칭을 직역하면 '러시아를 정벌하는 탄환'을 뜻한다.
경성일보에 게재된 정로환 광고를 보면 욱일기 문양을 배경으로 무장한 군인이 서 있다.
사람을 반으로 나눠 왼쪽은 흰색, 오른쪽은 검은색을 칠한 광고도 있었다.
이 광고에는 "문명이 발달한 서구는 백색 인종이다.
우리 유색인종도 문화가 발달한다면 백색으로 될 것이다.
이 약을 바르면 피부가 하얗게 된다"는 문구가 인쇄됐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광고는 물론 건강한 몸을 자본과 연관시키거나 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한 광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1910년대부터 약 제조업 경쟁이 치열해졌고, 약의 품질은 낮아져 신용을 잃어갔다"며 "그러나 광고는 여전히 주문처럼 약을 외우게 했고, 약 광고는 광고계에서 으뜸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그는 "약 광고는 미신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건강 담론의 유통에 개입했다"며 "의약품 광고를 통한 시각적 경험은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탄생시켰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미신의 연대기 = 테오리아. 544쪽. 2만5천 원.
이 약 한번 잡숴 봐! = 서해문집. 512쪽. 3만3천 원.
/연합뉴스

발달한 과학기술을 누리는 현대인의 시선으로 당시 사회를 보면 기이하면서도 흥미로운 요소가 적지 않다.
인문학자들이 최근 잇따라 펴낸 책 '미신의 연대기'와 '이 약 한번 잡숴 봐!'는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각각 미신과 약 광고라는 틀로 들여다본다.
모두 신문에 실린 기사와 광고를 활용한 연구 성과물이다.
철학을 전공한 이창익 박사가 쓴 '미신의 연대기'에 등장하는 사례는 매우 충격적이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시작은 1935년 여름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초복과 중복이 지나도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가물었다.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됐다.
한 노인의 말에 따라 여성들이 산에 올랐다.
일부는 몰래 묻힌 시신을 찾고, 다른 무리는 집단 방뇨를 했다.
비를 기원하며 행한 여성들의 집단 방뇨는 비슷한 시기 곡성에서도 벌어졌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스러운 장소가 오염되면 오염물을 씻어내기 위해 신성한 힘이 저절로 작동해 비를 내릴 것이라는 믿음이 내재해 있었다"고 분석한다.
나병을 앓는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인육을 먹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신체 일부를 섭취해야 병이 낫는다는 강한 믿음이 퍼져 있었다.
어린아이를 살해하거나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는 사건도 발생했다.
저자는 나병 환자들이 저지른 잔혹한 사건이 신문에 연이어 보도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짚는다.
그는 "수많은 인육 포식 사건은 나환자를 일상 공간에서 제거하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구실이었다"며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을 격리한다는데 누가 찬성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미신의 백미는 요사스러운 종교인 사교(邪敎)이자 사이비종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백백교'(白白敎)였다.
백백교는 전정운이 창설했다고 전하는데, 그는 자신을 '춘하추동'이 아닌 '동추하춘'의 사람이라고 했다.
동추하춘에는 계절과 시간을 거스른다는 의미가 담겼다.
전정운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차남 전용해가 교주를 맡았다.
그는 측근을 통해 포교를 지속하면서 여성을 첩으로 삼고 재산을 빼앗았다.
이러한 행태가 탄로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피해자는 346명으로 추산됐다.
저자는 "당대의 유사종교는 정치와 종교 사이의 경계선을 마음껏 횡단하면서 종교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가능성에 닿으려 했다"며 "우리가 망상이라 비난하는 유사종교에 인생을 쏟아부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적 상황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어 "미신 자료 연구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엉뚱하고 황당하고 무지몽매한 세계에서 살았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신적 믿음이라도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었던 세계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도판 자료를 많이 실어 자료집 같은 느낌을 주지만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다.
일례가 오늘날에도 유명한 '정로환'(征露丸)으로, 이 약의 명칭을 직역하면 '러시아를 정벌하는 탄환'을 뜻한다.
경성일보에 게재된 정로환 광고를 보면 욱일기 문양을 배경으로 무장한 군인이 서 있다.
사람을 반으로 나눠 왼쪽은 흰색, 오른쪽은 검은색을 칠한 광고도 있었다.
이 광고에는 "문명이 발달한 서구는 백색 인종이다.
우리 유색인종도 문화가 발달한다면 백색으로 될 것이다.
이 약을 바르면 피부가 하얗게 된다"는 문구가 인쇄됐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광고는 물론 건강한 몸을 자본과 연관시키거나 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한 광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1910년대부터 약 제조업 경쟁이 치열해졌고, 약의 품질은 낮아져 신용을 잃어갔다"며 "그러나 광고는 여전히 주문처럼 약을 외우게 했고, 약 광고는 광고계에서 으뜸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그는 "약 광고는 미신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건강 담론의 유통에 개입했다"며 "의약품 광고를 통한 시각적 경험은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탄생시켰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미신의 연대기 = 테오리아. 544쪽. 2만5천 원.
이 약 한번 잡숴 봐! = 서해문집. 512쪽. 3만3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