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인의 절규와 목격담 담은 책 '살아남은 형제들'

부산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불법적 납치와 감금, 폭행, 살인이 자행된 곳이다.

구타는 일상이었고, 성폭행도 비일비재했다.

시신을 뒷산에 암매장했으며, 일부 시신은 해부용으로 대학병원에 팔기까지 했다고 한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도 551명에 이른다.

막강한 권력의 비호는 형제복지원의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운영을 더욱 부추겼다.

전두환 정권은 박인근 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국민포장(1981년)과 국민훈장 동백장(1984년)을 수여했다.

매년 10억~20억원이 시설 운영비로 지원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은 1988년 폐쇄됐고, 사건은 빠르게 잊혀갔다.

현직 언론인인 부산일보 이대진 기자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33주 동안 피해생존자 27명과 시대 목격자 6명 등 모두 33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의 신간 '살아남은 형제들'은 절망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들려준다.

한낱 민간시설에 불과했던 형제복지원이 그토록 쉽게 불법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공권력이 이들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피해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대다수는 자신의 집 앞에서 놀다가, 또는 자기 집에서 자다가,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기 위해 부산역을 경유하다가 경찰 등에 붙잡혀 형제복지원으로 넘겨졌다.

1986년 기준으로 전체 수용자 3천975명 중 경찰에 의해 입소한 인원은 3천117명이나 됐고, 구청을 통해 입소한 인원은 253명에 달했다.

원생 대다수가 경찰이나 행정관계자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넘겨진 것이다.

이들의 인권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모든 이들이 감시와 감금의 대상이었고, 비뚤어진 군대식 문화가 일상을 완전히 장악했다.

낚시 공장, 가구 공장, 봉제 공장 등 각종 공장에서 무급에 가까운 노역을 하루 10시간 이상 감당했다.

상처가 나면 그 부위에 소금이나 된장을 바르는 데 그쳤고, 쓰레기나 다름없는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했다고 한다.

책의 제1부 '인간 청소'에서는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상황을 증언하고, 2부 '짐승의 삶'과 3부 '묻힌 죽음', 4부 '담장 너머'에서는 복지원의 일상과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드러낸다.

이어 5부 '곪은 상처'에서는 퇴소 이후 생존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와 고달픈 삶을 들려준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잔혹한 인권 유린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박인근 일가에 가장 큰 책임이, 또한 이에 적극 가담한 공권력과 이들에 대해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은 언론, 이들의 행태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무관심했던 시민 다수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제부터라도 무관심과 방조라는 공모의 끈을 놓고 피해자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그날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는 것이다.

피해생존자들은 2012년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인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를 계기로 모여들기 시작해 본격적인 피해자 운동을 벌여나갔다.

이들 당사자의 노력에 힘입어 형제복지원 사건은 30여 년 만에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또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사건진상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작년 7월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한편, 대법원은 박인근 전 원장(작고)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를 지난 3월 기각했다.

호밀밭. 432쪽. 1만8천원.
전두환 집권기에 발생한 형제복지원 사건 증언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