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체계와 거리명에 담긴 역사 조명

18세기 합스부르크 왕가를 이끌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로이센 등 경쟁자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았다.

응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군대가 필요했다.

인구는 충분했다.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보헤미아, 트란실바니아, 이탈리아 일부 등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집 명령을 내려도 병사들은 잘 모이지 않았다.

인구가 과밀한 마을에서는 사람들을 헤아릴 방법이 없었고, 가구를 구분할 방법도 없었던 탓이다.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집마다 번호를 매기는 것이었다.

모든 가구에 번호를 부여하고 그곳의 거주자 명단을 작성하면 어느 가구든 신원을 확인할 수 있고, 전투 가능한 연령대의 남자 구성원을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거리 이름에 담긴 권력과 부…'주소 이야기'
최근 출간된 '주소 이야기'(민음사)는 주소의 기원과 역사를 탐색하고, 주소 체계와 거리 이름에 담긴 다양한 사회 정치적 이슈를 조명한 책이다.

작가이자 변호사인 저자 디어드라 마스크는 미국·영국·독일·오스트리아·한국·일본·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돌아다니고, 여러 문헌을 뒤져 주소와 관련된 입체적인 이야기를 그려냈다.

저자에 따르면 주소는 길을 찾거나 편하게 우편물을 찾기 위해 고안된 게 아니다.

테레지아의 사례처럼 국가가 사람들을 쉽게 찾으려고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주소는 국가가 세금을 매기고, 범죄자를 찾아 투옥하고 치안을 유지하려고 고안했다.

그러나 도시가 확장하고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주소가 지배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발전하진 않았다.

우선, 주소 덕택에 유권자 등록과 선거구 책정이 쉬워지면서 주소는 민주주의 증진에 보탬이 됐다.

인프라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고, 전염병 확산도 막았다.

19세기 영국 의사 존 스노는 지도와 주소를 활용해 콜레라의 진원지를 파악했다.

주소는 또한 부와 경제적 가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스트리트'(Street)에 있는 주택이나 건물이 '레인'(Lane)에 있는 건물에 견줘 절반 가격에 거래된다.

미국에서도 주소에 '레이크'(Lake)가 들어간 주택은 전체 주택 가격 중앙값보다 16% 높다.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에서는 저속하거나 우스운 이름의 거리가 있는 건물 가격이 정상적인 이름의 건물 가격보다 20% 낮다.

부동산, 학군 등 경제적 이해와 주소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저자는 "도로명이 정체성과 부에 관한 문제이며 인종 문제기도 하다"며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은 대개 권력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아람 옮김. 496쪽. 1만8천원.
거리 이름에 담긴 권력과 부…'주소 이야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