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정권을 망라한 전직 외교 수장들이 모여 문재인 정부 외교를 실패로 규정하고 ‘외교의 부활’을 촉구했다. 대북외교·평화외교에 편향되다 보니 중국과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며 ‘원칙 있는 외교’를 주문했다.

굳이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국 외교의 파탄은 너무나 분명하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이 하나같이 한국을 ‘패싱’하고 있다. 미국은 펑펑 남아도는 백신의 한국 지원을 거절했고, 국무장관이 일본까지 날아오고도 예정된 한국 방문을 취소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핵심 사안마다 불협화음이다 보니 이게 동맹인가 싶을 정도다. 일본은 대화 요청에 대꾸도 안 할 만큼 한국을 무시한 지 오래다. 다자 회담에선 늘 문 대통령이 만남을 요청하고 일본 총리는 피해다니는 민망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굴욕적일 만큼 하대한다. ‘3불(不)’을 약속해 주고도 5년 내내 시진핑 방한만 읍소하는 기막힌 상황이다. 그래도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하면 대통령, 국회의장, 여당 대표가 줄줄이 나서서 환대해준다. 북한의 무시는 더 노골적이다. 문 대통령이 야심차게 ‘종전선언’을 들고나오자 김정은도 아닌 그 여동생이 카운터파트를 자처하며 가타부타 조건을 떠벌렸다.

전직 외교 수장들은 ‘실패한 외교’라고 했지만 실상은 ‘실종된 외교’다. 아시아·태평양을 주름잡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코앞에서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만 빠졌다. 도대체 외교라는 것이 있다면 이처럼 존재감 없을 수 있겠나. 외교의 알맹이가 없으니 ‘남북 쇼’와 김정은·시진핑 방한 같은 보여주기 이벤트에 더욱 집착하는 악순환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휘몰아치며 세계는 외교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미·중 경쟁은 맛보기”(윤병세 전 장관)다. 이제 외교와 경제가 직결되는 새로운 시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더러운 중국 철강’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으며 일전을 다짐했다. 중국은 더하다. 며칠전 끝난 6중전회에서 ‘중국 특색의 애국 외교’를 강조했다. 전랑외교의 공개선언이다. 북한은 임계점을 넘나드는 도발로 핵무장 완성단계다.

이 판국에 한국만 번지수 틀린 종전선언에 집착하며 우방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방한한 미국 의원에게 ‘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도록 방치했느냐’고 떼쓰는 외교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