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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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부 장관이 미국 현지에서 드러내놓고 중국과 북한 편을 드는 말을 작정한 듯 늘어놓아 관심 뉴스가 됐다. 정치가 그렇듯이 외교도 ‘말’이 가히 전부라고 할 지경인데, 한국의 외교 책임자는 왜 친중국 발언을 이어갔을까. 많은 언론 매체가 문제 제기를 하고, 많은 신문이 비판적 논평을 내놓은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한 해명 혹은 변명을 하면서도 계속해 중국 편을 들고 나섰다. 한미동맹을 흔들자는 것이었을까. 마치 중국 외교부 대변인 같다는 비판까지 받은 중국 두둔 발언은 ‘정의용 개인 생각’이었을까.

미국이 중국을 에워싸며 ‘쿼드’ 안보협의체까지 본격 가동하는 상황 등을 볼 때 비상식적이고 분별없는 행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개의치 않겠다는 투였다. 미국과 중국이 기업과 신기술, 금융 등 경제·산업 차원을 넘어 군사·안보 등 전면적으로 대립·대결하고 있는 국면이라는 점을 볼 때 정의용의 이런 파격적 행동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다수 국민 시각일 것이다.

◆친중 '정의용 발언'에 대한 두 가지 관점

두 가지 가정 혹은 관점을 두고 그의 발언을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엇나간 ‘남북 관계’를 어떻게 좀 해보고 싶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희망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문재인-김정은 회담을 하고 싶은 데, 특히 내년 2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시즌 등에 문-김 회담을 하고 싶은 데 중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 것 아닐까. 북한은 핵무기를 지렛대로 오매불망 미국과 그 어떤 회담이나 관계 개선을 바라면서 한국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런 판에 현실적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중국이고, 그래서 중국 눈치를 살피는 것이라면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취지라도 동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왜 그러는지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다. 중국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세계적 행사로 잘 포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더구나 중국이 마치 ‘큰 형’처럼, 중국이 후원자처럼 인식되는 베이징에서의 남북회담이라면 여러모로 나쁠 게 없다. 한국이 그간 ‘시진핑 방한’에 많이 매달려왔으니 그 카드도 여전히 중국 손아귀에 있다. 다시 다 옮길 필요도 없는 미국에서의 ‘정의용 친중 발언’은 요컨대 중국을 향해 좀 들어달라는 얘기였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다수 친중파들이 지적하고 강조하는 한·중의 경제관계에 대한 오해 문제다. 국내 친중 그룹의 인식 기반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정치사회적 이념 문제는 일단 유보하자.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주요한 요소 하나가 양국의 경제 관계다. 양국의 경제적 협력은 매우 넓고 깊어져 있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인데, 어떻든 현실론이다. 좋게 해석하면 ‘중국은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한국의 최대교역국이니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일 테다. 2000년도 ‘마늘분쟁’부터 최근의 이른바 ‘사드보복’까지 중국이 무역에서 때로는 강력한 비관세장벽을 동원하면서 다수 한국인들에게 중국의 거친 행동이 부담스럽고 때로는 두려운 어떤 대상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친중파 내지는 중국 존중파들이 과민 반응한 게 누적되면서 굳어져가는 현상이기도 하다.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사드보복’을 보면 중국이 과연 스스로 주창하는 자유무역 지향 국가가 맞는지, 그토록 강조해온 WTO(세계무역기구)체제를 수호하는 진정한 회원국인지, 그런 의심스러운 대목부터 짚으며 봐야 할 사안이다.

◆'밸류체인' 따른 대중 수출입… 중국의 한국 돕기가 아니라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

중요한 것은 한국과 중국 사이의 수출입 교역물량이 많고, 양국 간 투자규모도 급증한 게 현실하다 해도 이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상호 간 대등한 합의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어느 한쪽의 시혜나 특혜적 조치에 따른 성과가 전혀 아니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의 경제적 선택이든, 기업 간 거래든, 국가 간 무역이든 서로 필요하니 구매를 하고 수요와 공급의 만남이 가장 이상적인 균형점이었기에 거래가 된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수출을 위한 중간재로서 한국산이 꼭 필요하다. 반도체 화학제품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중국 제품이 가성비가 좋다거나 지리적 이점 등으로 가장 효율적이니 중국산을 수입한다. 한국이 중국 앞에서 위축되거나 막말로 ‘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 수출의 25%가량(2020년 25.9%)이 중국으로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국에서 수입 비중도 20%(2020년 23.3%)를 오르내린다. 한국으로서는 수출지역의 다변화, 수입선의 다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은 맞다. ‘자유로운 무역’과 ‘적극적인 개방’이라는 두 바퀴에 기대야 발전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큰 숙제이자 개선방향인 것은 사실이다. 이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의 고민이다.

하지만 중국이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많이 구매해가는 것은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산업의 국제 ‘밸류 체인’이 그렇게 구축돼 왔다. 서로에게 도움 되는 쪽으로 인류가 움직인 결과다. 더구나 중국은 ‘자유 무역, 공정 교역’을 매우 강조하고 있고, 그런 기치 하에 지금과 같은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중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사드보복과 같은 비관세 장벽을 높일 게 아니라 WTO체제를 적극 이행해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을 향해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당연히 경제(의존도) 때문에 중국과 친해져야 한다는 논리는 넌센스다. 같은 논리를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을 놓고 빚어진 한·일 간의 교역 갈등에 적용해보면 한일 관계의 개선 문제에서도 답은 뻔히 나온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애매한 얘기도 그렇게 보면 그다지 의미가 없는 논리가 될 것이다.

◆외교장관의 과한 대중 저자세, 대한민국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도

칸트 선생은 일찍이 지적했다. ‘교역 등 경제관계 만큼 국가 간 관계를 좋게 해주는 요인은 없다’며 교역의 증대는 전쟁도 막아준다고 했다. 한-중도 은연 중 그런 관계를 형성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도 호혜 평등의 관계, 상호 존중의 발전을 그렇게 강조해왔으면서도 한국만 저자세여서는 곤란하다. 한번 ‘을(乙)’을 자처하니 계속 그 짝이다. 정의용 식 저자세 친중 발언을 양국 사이의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스스로 약자를 자처하는 꼴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중국만 한국의 유별난 무역 고객이 아니다. 가뜩이나 북한을 감싸고도는 행보를 보여 온 한국 외교부 장관의 이해하기 어려운 친중 발언이 우리나라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의 외교 책임자가 이상한 말을 이어가면 나라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경제와 안보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 더구나 반도체 전쟁 와중 아닌가.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갈까봐 더욱 걱정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