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주의가 다수의 공감 받는 데에는 진지한 고민 필요"
'악마판사' 문유석 "코로나19 사태로 변한 세상 담아냈죠"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런 세상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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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 가상의 대한민국 속 다크 히어로의 활약을 그려낸 tvN 드라마 '악마판사'의 문유석 작가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걸 보며 무서움을 느꼈다"는 그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는 걸까 생각하다가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스페인에서는 요양원 직원들이 도망가 버려서 방치된 노인들이 집단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경제가 붕괴해 생계가 곤란한 이들이 폭증하고….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걱정스러운 현상들을 극에 녹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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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판사' 문유석 "코로나19 사태로 변한 세상 담아냈죠"
전국민 참여재판을 라이브쇼로 진행하는 시범재판부의 부장판사 강요한(지성 분)은 대기업 총수에게는 235년형, 상습 폭행을 일삼던 '금수저'에게는 태형을, 성범죄자에게는 해외 교도소에서의 복역을 선고하는 등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판결들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문 작가는 "극 중에 나온 판결들은 진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엄벌주의가 극단화되어 갈 때의 부작용에 관한 '블랙 미러'식의 사고 실험이었다고 보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엄벌주의가 다수의 공감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고민은 예전부터 가져왔다"고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극 중 악역들이 처단당하고 새롭게 그 자리를 차지한 엘리트들 역시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행태들을 보입니다.

결국 더디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시스템이 온전하게 바뀌어야 진정한 변화가 오겠죠. 가온의 독백, '요한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가 이 이야기의 진정한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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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판사' 문유석 "코로나19 사태로 변한 세상 담아냈죠"
문 판사는 현실과 닮은 듯하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디스토피아 설정, 고전 비극의 서사, 문어체 대사 등을 담을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공이 컸다며 극찬했다.

"정말 모든 배우분이 찬란하게 빛나는 연기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과잉될 만큼 집어넣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분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성 배우, 김민정 배우부터 단역 분들까지 배우분들의 훌륭한 연기가 대본의 이상함과 부족함을 메워주셨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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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판사'는 판사 출신 문 작가가 전업 작가로 집필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묘하게도 시간은 훨씬 많아졌는데 힘들기는 훨씬 더 힘들었다.

본업이 따로 있을 때는 글쓰기가 힐링이었는데, 그것이 직업이 되니까 스트레스가 되더라.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것 같다"면서도 "자유를 찾아 선택한 길이니, 후회는 없다.

더 즐겁게, 더 자유롭게 글 쓰고 여행하며 살고자 한다"고 집필 소감을 전했다.

드라마로는 판사들의 성장기를 따뜻하게 그려낸 '미스 함무라비'에 이어 '악마판사' 등 판사라는 직업과 법정을 소재로 한 작품만을 그려온 그는 코믹, 휴먼, 스릴러, SF,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창작자 이전에 온갖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사랑하는 소비자로서 제가 사랑하는 다양한 장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이번에 다크한 장르물을 썼으니 다음번에는 반대로 밝고, 쉽고, 낙관적인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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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