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시민 가장해 "일본이 충분한 배상과 사죄 했다고 확신"…이름 빼고 내용 같아
실무진 업무 마비 지경…"일본이 폴란드 희생자 조각상 세우면 어떻겠나"에 황당해해

일본이 독일 뮌헨에서 전시 중인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전시회 실무진에게 다양한 독일 시민 명의로 똑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하루에 수십 통씩 배달되고 있어 배후가 주목된다.

실무진들은 개인 명의와 전시장 명의 이메일 계정으로 보낸 사람 이름만 다른, 똑같은 내용의 메일이 지금까지 수백통 쏟아져 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푸념했다.

독일 문화예술가단체 '아트5'는 오는 9월 15일까지 뮌헨 슈퍼+센터코트와 플랫폼에서 '예술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한국과 일본 작가 기획전을 개막했다.

독일 소녀상 전시 실무진에게 쇄도하는 수백통의 괴메일 배후는
23일(현지시간) 연합뉴스가 복수의 전시회 실무진이 받은 독일인 명의의 이메일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름을 제외한 내용은 모두 일치한다.

독일인 시민을 가장해 쓴 듯한 이메일의 내용을 보면 아트5가 주최하는 예술과 민주주의 전시회에서 위안부 조각상을 전시하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이어 해당 조각상은 매우 논란의 여지가 많고 한일 간 분쟁의 원인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주제는 인권보다는 정치와 관련이 많고, 독일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이에 참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주장이다.

독일인으로 위장한 것 같은 메일 전송자는 이어 '독일 민족'으로서 갑자기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폴란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각상을 세운다면 심경이 어떨 것 같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는 일본의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독일인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확산할 게 명백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일본제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과 같은 국가에 끼친 피해는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독일도 끔찍한 만행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거의 600만 명의 폴란드인이 독일 정부에 의해 학살됐다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실들과 문제 인식을 기반으로 보면 독일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관여하는 게 합당한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국이 자주 위안부 조각상을 활용해 일본에 추가적인 공식 인정과 배상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은 충분한 배상과 사죄를 했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독일도 폴란드에 대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일은 영원히 용서되지 않는다는 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아는 만큼, 과거사로 인해 다른 나라에 대해 갖는 증오감을 독일이 지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마무리 지었다.

독일 소녀상 전시 실무진에게 쇄도하는 수백통의 괴메일 배후는
이메일 폭탄에 시달려온 전시장 실무진은 특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폴란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각상을 세우면 독일인으로서 어떨 것 같냐는 대목을 가장 황당해했다.

한 전시장 관계자는 "개인계정과 전시장 계정을 통해 매일 각각 수십 통씩 지금까지 모두 300통이 넘는 이메일을 받아서 괴롭다.

친구들에게 이메일 확인을 제때 못해도 양해해 달라고 공지했다"고 하소연했다.

또 "이메일은 모두 같은 내용으로 각기 다른 독일 이름으로 보내졌다"고 확인했다.

그는 "특히 독일 민족으로서 일본이 폴란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각상을 세운다면 어떤 심경일 것 같냐고 반문하는 게 가장 황당하다"면서 "당연히 좋은 일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전시장 관계자는 "전시에 관계된 사람들의 메일주소를 수집해서 이메일을 보내기까지 큰 노력을 들였을 텐데, 얼마나 속이 타면 전시 방해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까 싶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메일 내용도 실제로 대화를 시도했기보다는 허점이 곳곳에 보이는 훈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도 "이메일 안에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행한 잔학한 만행을 추모하는 조각상을 폴란드나 다른 나라에 세우면 심경이 어떻겠냐는 게 사례로 제시돼 있는데, 웃긴 것은 이는 좋은 것 아니냐"라고 거듭 반문했다.

그는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있어서도 구원이 된다"면서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한다면 모두가 승자가 될 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독일 소녀상 전시 실무진에게 쇄도하는 수백통의 괴메일 배후는
이번 소녀상 전시와 관련해 일본 측은 철거 요구를 예고하며, 집요하게 방해 공작을 벌였다.

뮌헨 주재 일본총영사관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양립하지 않는다"며 소녀상이 철거되도록 관계자를 상대로 설명을 계속하고 설득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일본 공영방송 NHK가 전했다.

일본 영사관 측은 뮌헨시와 바이에른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 페트라 켈리 재단,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등 후원단체에도 소녀상 전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