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착실한 준비로 백제와 고구려 무릎 꿇린 신라, 2단계로 당나라와 전쟁 이겨 삼국통일 이뤘다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역사 산책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58)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
    경북 영주 부석사.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의상이 세운 절이다. 귀국할 때 용이 돼 의상을 보호한 선묘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석하사진문화연구소
    경북 영주 부석사.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의상이 세운 절이다. 귀국할 때 용이 돼 의상을 보호한 선묘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석하사진문화연구소
    국가적 위기는 대부분 대혼란과 체제 붕괴로 이어진다. 고비를 넘겨 극복하는 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평가가 엇갈리지만 신라의 삼국통일이 그렇다. 신라는 6세기 초까지 약소국이었는데 약 150년 후인 668년 삼국을 통일했다. 거기까지는 1단계로 볼 수 있다. 백제와 고구려를 무릎 꿇리는 수준이었다. ‘일통삼한(一統三韓)’의 진정한 실현은 2단계인, 8년에 걸친 나당(羅唐)전쟁에서 승리하고 내부 안정을 완성했을 때다.

    왕권 강화와 선진 문물 수용

    신라는 6세기 초에 이르러 대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우산국 복속(512년)을 시작으로 전략지구를 체계적으로 장악해 외교망을 확장하고 경제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군사력과 해양활동을 강화했다. 또 기존 체제와 신앙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인 끝에 불교를 공인하고 이를 왕권 강화, 새로운 인재 육성, 선진 문물 수용에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진흥왕 33년에 사찰을 세우고, 전사한 사졸(士卒)들을 위로하는 ‘팔관연회’를 열어 사상의 통일을 유도했다. 통일사업의 주체인 자장, 의상 등은 유학 승려였고, 전통신앙과 불교가 조화된 화랑도는 종교 갈등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김춘추의 활발한 외교활동

    신라의 통일정책 중 의미있는 것은 국제질서에 진입하고, 국제환경의 가치와 이용 가능성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신라는 7세기 중반에 이르러 위기에 처했다. 642년 의자왕에게 40여 개 성을 빼앗기고, 이어 대야성을 공격당해 성주인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 죽었다. 김춘추는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갔으나, 죽령 서북의 땅을 돌려달라는 제의를 거부해 옥에 갇혔다가 탈출했다. 고립무원 신세인 신라는 643년 당나라에 출병을 원하는 ‘걸사표(乞師表)’를 보냈으며, 계속해서 사신과 공물을 보냈다. 고당(高唐)전쟁이 벌어질 때 군사 3만 명을 파병했고, 그 와중에 백제에 7개 성을 빼앗겼다. 김춘추는 아들과 함께 당나라를 방문해 태종에게 파병을 요청했고, 신라와 당은 각각 백제(평양 이남)와 고구려 영토를 갖기로 합의했다(《삼국사기》).

    결국 당나라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은 성공했고, 신라는 당나라 관복을 차용했으며, 고종이 즉위하자 연호를 폐기한 뒤 당의 연호를 사용했다(문정창, 《한국고대사》). 귀국 도중 고구려 수군에게 붙잡힌 김춘추가 탈출에 실패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평양성 함락 이후 2단계로 접어든 삼국통일전쟁

    660년 여름(6월), 13만 명의 당나라군은 서해 중부를 횡단해 덕적도에 도착, 태자가 지휘한 신라함대 100척과 합세했다. 나당 연합수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간신히 승리한 김유신의 5만 군대와 합세해 기벌포 해전에서 승리하고, 사비성을 함락한 뒤에 웅진성으로 도피한 의자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그해 말 당나라는 고구려를 공격하며 신라의 지원을 요구했다. 백제와 금마군(익산 일대)에서 전투하다 죽은 무열왕을 계승한 문무왕은 수레 2000여 대에 쌀과 벼 등을 실어 평양성으로 보냈다. 하지만 고구려군의 습격과 대풍·대설로 인해 군사와 말이 얼어죽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신라는 663년 백제·왜 연합군을 백강전투에서 물리친 뒤 국력이 강화됐다. 666년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가 귀순하자 문무왕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고구려를 멸(滅)하는 군대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문무왕은 친정군을 이끌고 황해도까지 북상해 당군의 평양성 도착을 기다렸으나, 당군이 패퇴하자 회군했다. 668년 당고종은 문무왕에게 대장군의 깃발을 주면서 고구려 공격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고, 신라는 대군을 파견했다.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삼국통일전쟁은 2단계로 접어들었다.

    나당 연합군의 주도권은 항상 당나라가 가졌다. 660년 백제를 공격할 때도 무열왕은 군사편제상에서 소정방의 지휘를 받았다. 당고종은 백제의 항복을 받고 귀국한 소정방에게 왜 신라를 치지(伐) 않았느냐고 힐난했다. 663년에는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임명했으며(《삼국사기》), 전쟁준비를 했다. 신라는 영토의 보존과 자주를 택하는 강경정책을 썼고, 670년 8년간에 걸친 나당전쟁이 시작됐다.

    √ 기억해주세요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신라는 6세기 초까지 약소국이었는데 약 150년 후인 668년 삼국을 통일했다. 거기까지는 1단계로 볼 수 있다. ‘일통삼한(一統三韓)’의 진정한 실현은 2단계인, 8년에 걸친 나당(羅唐)전쟁에서 승리하고 내부 안정을 완성했을 때다.

    ADVERTISEMENT

    1. 1

      [인사] 요진건설산업 ; 웰컴금융그룹 ; 인터로조 등

      ◈요진건설산업◎승진<사장>▷정찬욱<전무>▷오유진 신재복<상무>▷정태우 오재학<이사대우>▷황성모◈웰컴금융그룹◇웰컴저축은행◎승진<상무이사>▷위험관리책임자 이성수▷CEM본부 윤현식▷디지털사업본부 임성은<이사>▷디지털금융본부 진정한◇웰컴에프앤디◎승진<상무이사>▷전략경영실 백승문◇웰컴페이먼츠◎승진<상무이사>▷임원실 최문용◇웰컴자산운용◎승진<이사>▷주식운용본부 김덕기◈인터로조◎승진<상무>▷안정연 김천석◈종근당◎승진<전무>▷이규웅<상무>▷이주원 이창식<이사>▷심영곤 윤수미 이진오 송지수 정병무◇종근당바이오◎승진<이사>▷김진오◇경보제약◎승진<사장>▷김태영<전무>▷채현숙<상무>▷김병옥◈리가켐바이오▷신약연구소장 한진환◈코람코자산신탁◎승진<부사장>▷리츠투자부문 김철규▷가치투자부문 이상헌◎신규선임<상무>▷리츠투자부문 앵커리츠본부 조창우▷신탁사업부문 도시정비사업본부 오동진▷리스크관리실 김호영◈한국펀드평가◎승진<전무>▷전략기획본부 이성진<이사대우>▷평가1본부 이희원<부장>▷데이터분석팀 이중석◎보임<실장>▷평가2본부 류승미<팀장>▷평가2본부 평가2팀 김혜현◈한국항공대◎선임▷대학원장·AI융합대학장 안준선▷공과대학장 박상혁▷공과대학 부학장 강태곤▷항공·경영대학원장·항공·경영대학장 김진기▷기획처장 황완식▷학생처장 이상학▷입학처장 김휘양▷국제교류처장·학술정보관장 김상우▷항공기술교육원장 황인종 

    2. 2

      [부고] 김진철씨 별세 外

      ▶김진철씨 별세,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前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부친상=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 02-3410-3151▶조강묵씨 별세, 조성숙씨 남편상, 조병국 동덕정보통신 대표·조미혜·조정란씨 부친상, 윤석재 컨텍 대표 장인상, 박현주씨 시부상=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20분 02-3010-2000

    3. 3

      "기술개발 참여했으니 내 것"…손쉽게 빼돌리는 회사 기밀

      삼성전자 전직 임직원 10명이 D램 핵심기술을 중국 기업에 넘긴 혐의로 지난달 무더기 기소되면서 산업보안범죄의 실태 파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공개된 연구에서는 기술유출 범죄자 대다수가 “내가 개발에 참여했으니 내 것”이라는 착각으로 회사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5일 법조계에 따르면 홍세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KICJ) 부연구위원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산업보안 관련 1심 판결문 61건(피고인 85명·전체 사건 수 85건)을 분석한 결과, 범행 동기 중 ‘향후 활용하기 위해’가 56건(전체 사건 수의 65.9%)으로 압도적이었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8월 한국산업보안연구에 게재됐다.홍 부연구위원은 “막연하게 ‘나중에 쓸 데 있겠지’ 싶어서 범행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기술을 회사 자산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개인 소유로 착각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금전적 이익추구(38건, 44.7%), 창업 준비(21건, 24.7%), 이직·취업 목적(13건, 15.3%) 순으로 집계됐다.범행 시점은 퇴직·이직 직전이 39건(45.9%)으로 가장 많았다. 내부자 범행이 50건(58.8%)으로 외부자보다 많았으나, 외부자 단독 범행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내부자와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출력물·하드디스크·USB 등 저장 매체를 이용한 ‘물리적 반출’이 범행 수법의 55.3%(47명)로 가장 많았다.피해기업의 67.1%가 보안 서약서를 받고 57.6%가 보안시스템을 운영했지만 피해를 막지 못했다. 홍 부연구위원은 “보안 서약서 작성이나 교육 시 구체적 사례를 들어 사소한 반출도 금지됨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며 “이직&mi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