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받을 곳서 지지 못받아"…피해자 목소리 묻혀
"'10년 이상' 상담 못 받는 피해자가 절반"
'가족'이란 이름으로 쉬쉬…고립되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친오빠의 성폭력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알린 A(18)씨는 여전히 가해자인 오빠 등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

15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A씨는 피해를 2019년 6월 경찰에 처음 신고한 후 다음 달 초순까지 민간에서 운영하는 단기 쉼터에 머물렀다.

이곳은 일시 쉼터로 한 달에 일주일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A씨에게 장기 쉼터를 권했지만 A씨의 뜻에 따라 입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연합뉴스에 "제 뜻에 의해서였던 것은 맞다"며 "장기 보호시설에서는 세상과 단절된다거나 (하는 걱정과 함께) 당시 제가 하던 일에 지장이 커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 신세를 자주 졌던 A씨는 퇴원 때마다 부모의 설득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변호해온 이은의 변호사는 "미성년자, 청소년에게도 자발적 의지가 있기 때문에 설사 친권·양육권을 행사하는 부모가 부적절한 상황이라고 해도 국가가 강제로 수용소처럼 피해자를 데리고 있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가해자를 상대로 한 접근금지명령은 올해 3월 초에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쉼터 입소를 전제로 친오빠가 쉼터 인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여서 A씨가 집에 있는 현재로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쉬쉬…고립되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A씨는 오히려 고립된 처지였다고 한다.

수년 동안의 성폭력 사건이 재판에까지 넘겨졌음에도 가족으로부터는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친족 성폭력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발간한 상담 보고서를 보면 2019년 전체 성폭력 상담 사례 912건 중 친족 성폭력은 87건(9.5%)으로 나타났다.

피해가 가장 많은 시기는 7∼13세 어린이 때(33.3%)였다.

친족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상담소를 방문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조사해보니 '1년 미만'은 24.1%에 그쳤고 '10년 이상'은 55.2%에 달했다.

상담소는 "친족 성폭력은 피해 당시 가족에게 말하기도 어렵고 말하더라도 지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친밀한 가족관계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친족 성폭력의 특성상 빠른 대응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A씨가 신고한 올해 2월 사건의 경우, 경찰은 당시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집에 함께 있던 남매 부친이 '남매가 계속 장난을 치고 있었다'고 한 진술 등을 근거로 강제추행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그간 부모로부터 '오빠에게 살갑게 대해주라', '안아주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도 밝혔다.

이 변호사는 "특히 친오빠의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히는 일은 흔한 일"이라며 "이때 피해자는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하는 국선변호인 역시 "국민청원을 보면 피해를 당했는데 나를 가장 지지해줘야 할 부모가 그러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신고 이후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A씨에게 추가 피해가 없었는지 국가가 나서 세심히 살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데 한계가 있어 통상적으로 국선변호사에게 일임하는 상황"이라며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지런한 수사관도 있지만, 다룰 사건이 많은 수사관에게 이 문제를 떠넘기는 것도 문제가 있다.

추가 피해 등을 상시 체크하는 담당관 제도를 적극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들 교육이나 지원 역시 민간단체 활동가들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수사관이나 전문성 있게 심리 치료를 할 심리상담사가 참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직접 다뤄온 사람들이라면 피해자의 심리적 특수성을 고려해 현실적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