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개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은 모법인 ‘중대재해법’의 미비점을 해소하겠다던 당초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여전히 모호한 부분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대재해법은 사망 1명 이상 등 중대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이 밝혀지면 징역 1년 이상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현장 사고로 인해 책임자가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는 ‘중대한’ 법이다. 그런데도 법에서 위임된 세부사항을 정해야 할 시행령조차 ‘적정’ 인력·예산, ‘적절한’ 조치 등 모호한 표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런 식이면 현장 점검을 나가는 지방고용청 공무원들의 재량에 따라 기업인들이 범법자가 되느냐 아니냐가 판가름날 판이다.

‘시행령 제정안’은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성 질병 범위,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등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직업성 질병은 24가지로 구체화했다. 이 중엔 보건의료 종사자에게 발생한 B형 간염과 에어컨 냉각수 등으로 발생하는 레지오넬라증도 포함돼 있다. 당장 산업재해인지 인과성을 의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계는 그동안 직업성 질병의 중증도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재해로 간주될 수 있다며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경우’로 명시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이 같은 요구도 반영되지 않았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범위와 의무 부분도 명확하지 않다. 500인 이상 사업장, 시공능력 200위 내 건설사는 안전보건전담조직을 설치토록 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전담인력을 두고, 중대시민재해는 ‘적정’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안전보건 예산은 모두 ‘적정’ 수준이다. 얼마가 적정한지 과연 누가 판단하나. 경영 책임자의 범위를 구체화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다. 종사자 과실이 명백한 중대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면제해 달라는 경제계의 호소도 반영되지 않았다. 법의 취지가 ‘기업인 처벌’이 아니라 ‘산업재해 예방’이라면 근로자의 안전수칙 준수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상식일 텐데 말이다.

시행령이 모든 것을 다 규정할 순 없다. 하지만 규제 법규가 모호할수록 이를 판단하는 부처의 자의적 행정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전·현직 고용노동부 출신들의 기업 또는 로펌행이 이어지고 있다. 이유가 뻔하지 않은가. 기업은 괴롭고, 고용부 관련 공무원들만 신났다는 얘기를 허투루 들을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