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병풍치기, 지지자 동원 대신 어둠속 나홀로 출마선언
현충원 방명록에 "세상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져"
조용한 파격…비대면 출사표 읽고 무명용사비 찾은 이재명
국회의원 병풍치기도, 지지자 부대의 환호·함성도 없었다.

4년여 년 전인 2017년 1월 23일 소년공으로 일했던 성남의 시계공장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을 표방하며 출마 선언을 했던 이 지사는 1일 비대면으로 대권 재수의 도전장을 던졌다.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화돼 이날 오전 7시30분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영상이 공개된 14분 분량의 출마 선언은 이 지사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홀로 국민을 향해 자신의 집권 청사진을 나지막이 '보고'하는 자리였다.

대형 행사장 중앙에 국회의원들이 줄지어 서서 후보자의 '병풍'을 만들고 지지자들이 행사장 바깥에서 '대통령'을 연호하는 흔한 풍경과 사뭇 달랐다.

이날 출마선언 형식 자체가 그의 정치철학인 '실용'이라는 키워드로 축약된다는 게 캠프측 설명이다.

이 지사는 이날 짙은 남색 양복에 당의 상징색인 파란 넥타이 차림으로 배석자 없이 나홀로 등장했다.

첫번째 대권 도전 당시 격정을 토했던 이 지사는 이번에는 차분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의 출마 선언문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영상엔 슬로건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 문구와 자막, 노란 점퍼를 입고 방역을 점검하고 시장에서 민생 현장을 챙기는 등 도정을 살피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이 지사는 이번 출마 선언문을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청중에 웅변식 호소를 하는 일반적 출마 선언과 달리 비대면 선언인 점을 고려해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원고를 낭독했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오늘은 이 지사의 목소리가 메인이고, 다른 자료 화면들은 조연"이라며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그 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가 이 같은 방식을 택한 것은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고려하는 동시에 실용의 정치 철학과 메시지로서 승부를 보겠다는 의중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세 과시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지 않음으로써 여권 내 1위 주자로서 '낮은 자세'를 강조하기 위한 차원도 있어 보인다.

평소의 다소 튀는 캐릭터와 달리 차분한 낭독 스타일로 안정감을 강화하려고 한 포석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특히 이틀 전인 지난달 29일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지지자들이 대거 모인 가운데 대권 도전을 공식화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차별화 전략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조용한 파격…비대면 출사표 읽고 무명용사비 찾은 이재명
이 지사는 출마 선언 후 첫 일정으로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찾는 관행을 깨고 대신 무명용사비를 참배했다.

방명록엔 '선열의 뜻을 이어 전환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무명용사비 참배에 대해 "세상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며 "이름도, 위패도 못 남긴 그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의 수석대변인인 박찬대 의원은 "국난극복의 큰 힘은 무명의 국민에 있다"며 "대한민국은 고난 공동체로, 국민과 함께 극복해낼 수 있고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