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트우드·조르다노 등 각국 주요 문인 29명 참여한 '데카메론 프로젝트'

조반니 보카치오가 14세기 중반에 쓴 소설집 '데카메론'은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문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열흘간의 이야기'란 뜻의 이 작품은 흑사병 팬데믹을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온 숙녀 7명, 신사 3명이 열흘 동안 매일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흥미로운 서사를 담았다.

무엇보다 이 소설집은 당시 실제로 흑사병의 공포에 떨던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선사했다.

망가진 일상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희망을 잃어가던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울고 웃었고, 어떻게든 살아갈 힘과 용기를 되찾았다.

이야기의 힘으로 팬데믹의 풍랑을 헤쳐나간 셈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21세기에 인류는 다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강적을 만났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증이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고 1년 넘게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관계는 단절되고 우울감과 답답함이 모두를 지치게 했다.

그러자 문인들이 다시 이야기의 힘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700여 년 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그랬듯 '21세기 버전 데카메론'을 창조해 사람들을 힘든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게 돕자며 세계 각국의 인기 작가들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힘을 합쳤다.

뉴욕타임스 편집자들은 당대 최고 작가들이 집필한 단편을 모아 '우리 시대의 데카메론'을 만들자는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기획, 지난해 7월 신문에 이 프로젝트를 따라 쓴 단편 소설 29편을 게재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에 힘입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정해영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한다.

부제는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21세기에 재현한 데카메론…"이야기의 힘으로 팬데믹을 넘는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아일랜드 소설가 콜럼 토빈, 영국 작가 데이비드 미첼, 이탈리아 소설가 파올로 조르다노, 모잠비크 말과 포르투갈어를 결합한 독특한 문체로 알려진 미아 쿠토, 브라질 언론인 겸 소설가 줄리언 푸크스 등 29명의 유명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이 쓴 짧은 소설들에는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이 가져온 불안과 공포, 격리 봉쇄로 인한 단절과 고독, 비현실적인 상황과 예상하기 어려운 변화 등을 이해하고 예측하려는 노력 등이 생생하게 묻어난다.

소설적 상상력은 한계가 없고 장르와 형식도 다채롭다.

격리 중인 지구인들을 도와주러 온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이 갖가지 일화를 들려주고, 감염병을 피해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노르웨이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아낌없이 풀어내며, 봉쇄 명령으로 고립된 중년의 소설가는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등 '코로나 블루'에 지친 독자들을 울고 웃게 할 다양한 색깔의 단편들로 채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