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요청에 주류 판매 중단…"영업자유 침해" 소송 제기하기도
주세법 틈새 활용한 0.5도 맥주 눈길…'무알코올맥주' 존재감 커져
바야흐로 '술이 원수'인 시대가 됐다.

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된 것이다.

일본 보건 당국이 음주 회식을 매개로 감염이 확산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가운데 긴급사태가 발효된 지자체들이 급기야 관내 음식점에 술을 팔지 말라고 요청했다.

여러 음식점이 주류 제공을 중단했다.

애초에 술이 없으면 장사하기 어려운 업체 중에는 휴업을 택한 곳도 많다.

반면 요청을 무시하고 계속 술을 판매하는 음식점도 꽤 있다.

도쿄도(都)는 '신형인플루엔자 등 대책특별조치법'에 근거해 이들 업체에 휴업 명령을 내리고 있다.

따르지 않으면 원화로 환산해 300만원 남짓한 수준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요청을 무시할 때부터 '과태료를 내고 계속 영업하겠다'고 마음먹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당국과의 정면 대결을 택한 기업도 있다.

글로벌다이닝이라는 외식업체는 앞서 긴급사태 때 도쿄도가 내린 영업시간 단축 명령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영화 '킬빌'에서 혈전의 무대로 등장한 일식 주점 '곤파치'(權八)를 비롯해 10종이 넘는 음식점 브랜드를 거느린 꽤 유명한 기업이다.

일본에서 사업하는 이들은 당국이 요청하면 벌칙이 없더라도 주변의 눈을 의식해 어지간하면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글로벌다이닝이 이례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서 결과가 주목된다.

회색지대를 개척한 이들도 있다.

도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인 센소지(淺草寺) 인근을 돌아보니 긴급사태 중에도 생생한 맥주 사진을 내걸고 영업하는 곳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알코올 함량이 0.5%라고 적혀 있다.

아사히맥주가 '비아리'(BEERY)라는 이름으로 3월 말 출시한 제품이다.

알코올을 소량 함유했다는 의미로 '미(微)알코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미'에 맥주를 의미하는 '비어'(beer)를 합성해 명명한 것이다.

미(微)는 일본어에서 통상 '비'로 발음된다.

알코올이 들어있으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술인 셈이다.

도수가 낮다고는 하지만 긴급사태 와중에 버젓이 술을 파는 것이 괜찮을까.

점원에게 물었더니 1도 미만이면 술이 아니라고 반응했다.

실제로 일본 주세법을 찾아보니 제2조에 알코올 성분 1도 이상의 음료 또는 녹여서 알코올 성분 1도 이상의 음료를 주류로 규정하고 있었다.

주세법의 틈새를 이용한 알코올음료를 대안으로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맥주에 5% 정도의 알코올이 포함된 점을 고려하면 비아리 10잔을 마셔야 맥주 한잔을 마신 정도의 알코올을 섭취할 수 있다.

취기가 오르도록 마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주당들을 불러 모으는 효과가 있을까.

체념하고 무늬만 맥주인 음료로 대신한 식당도 많다.

이른바 '무알코올 맥주'다.

그런데 무알코올 맥주는 용어 자체가 모순적이다.

일본어로 '논아루코루비루'(ノンアルコ-ルビ-ル)라고 표기하는데 직역하면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맥주(麥酒)라는 의미다.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술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이런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인다.

줄여서 '논아루비루'라고 부른다.

무알코올맥주는 맥주와 비슷한 맛과 향을 즐기되 알코올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아류'지만 최근에는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현지 시장조사업체 후지(富士)경제의 분석을 보면 일본의 무알코올맥주 시장(알코올 함유량 1% 미만 맥주풍 음료 포함)은 2020년 726억엔(약 7천382억원)에 달해 전년도보다 3.9%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맥주류 시장이 2020년 10.6% 축소할 것으로 관측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무알코올맥주 시장은 올해 775억엔(약 7천880억원) 규모에 달하며 성장률을 6.7%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전체 맥주류와 비교하면 규모는 아직 5% 선에 불과하지만, 업계는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맥주업체는 저녁 시간대에 무알코올 맥주 TV 광고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고 슈퍼마켓에 가보면 무알코올 맥주는 일반 맥주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다.

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색깔은 비슷해도 무알코올맥주의 맛과 '효과'는 맥주와 꽤 다르다.

그런데도 무알코올 맥주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건강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 무알코올맥주 성장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취기 자체보다 술자리의 분위기만 즐기는 이들도 있다.

술을 못 마시는 이들이 맥주 대신 무알코올맥주를 들고 회식 자리에서 건배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지 꽤 됐다.

맥주업체 입장에서는 술을 못 마시는 소비자를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재료인 셈이다.

예를 들어 주류업체 산토리는 자사의 무알코올 맥주 제품인 '올프리' 사이트에 '임산부·수유 중인 여성이 마셔도 괜찮습니까'라는 질문과 '올프리는 알코올 0.00%이므로 알코올에 의한 영향은 없다'는 답변을 올려놓고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알코올 맥주 외에도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소프트드링크를 내세워 영업하는 음식점들도 있다.

어떤 식당은 몇천 원 정도를 내면 정해진 시간 동안 무알코올 음료를 무제한 마실 수 있는 서비스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보건 당국이 술을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원흉'으로 보고 규제에 나선 가운데 식·주류업계가 저마다의 살길 찾기에 나선 상황이다.

술을 동반한 회식 자리에서 감염이 빈발할 점을 고려하면 주류 판매 제한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여럿이 모여 식사를 하더라도 별 제한이 없는 점은 허점으로 보인다.

일본에는 한국과 같은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는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