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작업

가끔 문득 무엇엔가 꽂힐 때가 있다.

무작정 한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광고에서 본 상품에 꽂혀 사지 않으면 잠 못 이룰 때도 있으며,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계속 곱씹기도 한다.

대개는 집착으로 치부하지만, 때론 문득문득 떠오르는 단상이 되새겨볼 만한 아이디어가 되기도 한다.

이번에 이야기할 사진이 그랬다.

매일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신문 지면에서 본 사진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어렴풋한 이미지로 되살아나 다시 찾아보게 만들었다.

[신문 속 사진 읽기] 트리밍(trimming)
바로 지난 3년간 3차례 공사가 중단된 제주도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공사 현장 사진이다.

도로 옆 삼나무숲의 나무가 베어진 채 널찍한 공간이 드러나고 있다.

비자림로 확장공사는 제주시 구좌읍 대천교차로와 금백조로를 잇는 2.9㎞(3개 구간)를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다.

2018년 첫 삽을 떴지만 환경 단체 등에서 삼나무숲 훼손과 법정보호종 동식물 서식지 파괴 등 문제를 제기해 공사가 잠정 중단됐다.

지역주민의 10년 숙원 사업이며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확장하기 위한 일이라지만 전봇대보다 높이 자란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내고 주변 환경을 훼손해야만 할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살아있는 나무를 자르는 일은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 트리밍, 사진의 주제를 확대·강조하는 작업
'자르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사진 보정작업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무를 자르듯 사진도 자르고 다듬는다.

우리는 그것을 '트리밍한다'고 말한다.

트리밍(trimming)의 사전적 의미는 사진 원판에서 구도를 조정하기 위해 원화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 내는 일이다.

포토샵과 같은 사진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에서 작업한다.

현실 속에서는 잘 자란 나무를 잘라내면 차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지만, 현실을 이미지화한 사진에서는 사람, 사물 등 찍으려는 주제 외에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 공간을 없애 버리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사진의 여백을 잘라 없애고 사진에서 보여주려는 것을 확대,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뷰파인더를 통해 촬영 대상을 보며 구도를 잡는다.

이때 몸을 움직여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멀찍이 떨어져 보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줌렌즈를 이용해 초점거리를 다양하게 바꿔 찍을 수도 있다.

구도를 잘 잡아서 찍지만, 모니터에 띄워 놓고 보면 수평이 안 맞거나 지저분한 배경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있다.

사진의 수평을 잡아주면서 비뚤어진 가장자리를 잘라 내거나, 배경의 일부를 잘라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도사진에서는 한 개의 사진 원판을 가로 또는 세로로 자르기도 하고, 때로는 주제가 되는 피사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잘라 여러 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보도사진에서 트리밍 작업이 중요한 것은 한정된 지면이 갖는 공간의 제약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이 주제로 꽉 찬 사진이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신문사에서 고참들이 후배들에게 숱하게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 낙종이 특종된 사연
낙종이 특종이 된 보도사진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1994년 5월 19일 희대의 존속살해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부모를 살해한 패륜범죄다.

경찰의 현장검증 공개 시간을 뒤늦게 연락받은 문화일보 기자 J씨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단독주택)에 들어가지 못했다.

타사 기자들은 모두 찍은 현장검증 사진을 못 찍은 것이다.

'물먹은' J 기자는 집 마당을 분주히 오가는 형사들의 모습을 몇 장 찍는 데 그쳤다.

하지만 사진기자의 촉이 발동했는지 집안에서 집기를 들고나오는 사진 속의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아들이라는 느낌이 들어 확인해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사건의 충격적인 전말이 드러났다.

아들이 범인으로 밝혀졌다.

J 기자의 눈에 띈 사람이 아들이며 범인이었다.

뒤이어 경찰이 범인을 언론에 공개했지만, 현장에서 찍힌 범인의 사진만큼 좋을 수는 없었다.

특종이었다.

[신문 속 사진 읽기] 트리밍(trimming)
문화일보는 J 기자의 사진(왼쪽)을 범인을 중심으로 트리밍해 관련 기사와 함께 보도했다.

(오른쪽, 1994년 5월 26일 자 문화일보 사회면)
트리밍할 때는 잘라 내는 데 주저하지 말고 중심(주제)이 되는 부분을 제외한 불필요한 부분을 싹둑 잘라보자. 찍을 때보다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트리밍 하나로 느낌이 다른 여러 장의 사진을 만들 수도 있다.

나무 자르기는 신중해야 하며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달리 사진을 트리밍할 때는 과감할 필요가 있다.

사진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