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동지→10년 공백→중도의 기수…이광재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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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사, 여시재 거치며 운동권 선긋고 미래과제 천착
중도우파 성향 분류…이재용 사면에도 찬성 입장
27일 대권 도전을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이광재(56·강원도 원주갑) 의원은 아직도 '노무현의 오른팔', '노무현의 정치 동지'로 불릴 만큼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인사 중 한 명이다.
86 운동권 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에서 이번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이 의원이 처음이다.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그에 따른 부침도 만만치 않았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이 의원은 연세대 법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던 중 경찰 수배를 피해 부산으로 갔다가 1987년 지역의 인권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을 운명처럼 만났다.
노 변호사가 1988년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되자 보좌관으로 변신한 이 의원은 '노무현의 왼팔'로 불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과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 2002년 대선 승리의 길을 닦았다.
2003년 38세 나이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은 그는 이듬해 17대 총선에서 39살의 나이로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에서 당선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야당이 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불거진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평생 정치적 멍에를 안게 됐다.
2009년 3월 박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지만 5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고서 이듬해 강원도지사에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징역형을 받아 취임 7개월 만에 도지사직을 잃었고,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복권되기 전까지 긴 정치 공백기를 겪게 된다.
10년에 가까운 정치 공백은 친노운동권의 일원쯤으로 여겨졌던 그를 기업가 정신과 균형감 있고 넓은 안목을 가진 정치인으로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이 의원은 공백기 동안 재단법인 '여시재'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디지털, 기후 변화, 생명과학, 스마트 도시, 동북아 협력 등 미래과제에 천착하며 각계의 석학과 기업인, 전문가를 두루 접촉하며 식견을 넓혔다.
이때 쌓은 경험과 지식이 바탕이 돼 지난해 총선 이후 당내 K뉴딜 본부장을 맡아 한국형 뉴딜 정책을 총괄했고, 이는 대선 공약의 밑그림으로 이어졌다.
당내에서는 이 의원의 성향이 중도 우파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의원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문제와 관련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라며 여권 대권주자 중 처음으로 공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아직도 80년대 반독재 투쟁과 조국통일운동의 인식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옛 운동권 동지들 사이에선 "변절자" "삼성장학생"이란 딱지가 붙었다.
운동권 강경파들과는 이미 이념과 지향 면에서 절연해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시대교체, 세대교체, 선수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산업화·민주화 주역과 함께 2030세대, 디지털 세대가 함께 국가 경영에 참여하는 정치혁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12주기 추도식이 열린 지난 23일 경남 봉하마을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공식화한 그는 이날 출마 선언에서도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노무현 정신'에서 핵심은 고인이 진보진영의 반대를 뚫고 이뤄낸 한미FTA 체결과 고질적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추진 같은 미래와 통합 중심의 사고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운동권 코어'들과는 시선이 다르고 다른 길을 지향하고 있지만 친노·친문 진영 내부에선 유일한 적통자인 게 사실이다.
진영 내부에서 이념을 제쳐두고 이 의원을 밀어준다면 경선에서 대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일단은 '달라진 이광재'를 대중에 알려 낮은 대권 지지율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연합뉴스
중도우파 성향 분류…이재용 사면에도 찬성 입장

86 운동권 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에서 이번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이 의원이 처음이다.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그에 따른 부침도 만만치 않았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이 의원은 연세대 법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던 중 경찰 수배를 피해 부산으로 갔다가 1987년 지역의 인권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을 운명처럼 만났다.
노 변호사가 1988년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되자 보좌관으로 변신한 이 의원은 '노무현의 왼팔'로 불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과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 2002년 대선 승리의 길을 닦았다.
2003년 38세 나이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은 그는 이듬해 17대 총선에서 39살의 나이로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에서 당선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야당이 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불거진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평생 정치적 멍에를 안게 됐다.
2009년 3월 박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지만 5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고서 이듬해 강원도지사에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징역형을 받아 취임 7개월 만에 도지사직을 잃었고,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복권되기 전까지 긴 정치 공백기를 겪게 된다.
10년에 가까운 정치 공백은 친노운동권의 일원쯤으로 여겨졌던 그를 기업가 정신과 균형감 있고 넓은 안목을 가진 정치인으로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이 의원은 공백기 동안 재단법인 '여시재'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디지털, 기후 변화, 생명과학, 스마트 도시, 동북아 협력 등 미래과제에 천착하며 각계의 석학과 기업인, 전문가를 두루 접촉하며 식견을 넓혔다.
이때 쌓은 경험과 지식이 바탕이 돼 지난해 총선 이후 당내 K뉴딜 본부장을 맡아 한국형 뉴딜 정책을 총괄했고, 이는 대선 공약의 밑그림으로 이어졌다.

이 의원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문제와 관련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라며 여권 대권주자 중 처음으로 공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아직도 80년대 반독재 투쟁과 조국통일운동의 인식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옛 운동권 동지들 사이에선 "변절자" "삼성장학생"이란 딱지가 붙었다.
운동권 강경파들과는 이미 이념과 지향 면에서 절연해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시대교체, 세대교체, 선수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산업화·민주화 주역과 함께 2030세대, 디지털 세대가 함께 국가 경영에 참여하는 정치혁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12주기 추도식이 열린 지난 23일 경남 봉하마을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공식화한 그는 이날 출마 선언에서도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노무현 정신'에서 핵심은 고인이 진보진영의 반대를 뚫고 이뤄낸 한미FTA 체결과 고질적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추진 같은 미래와 통합 중심의 사고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운동권 코어'들과는 시선이 다르고 다른 길을 지향하고 있지만 친노·친문 진영 내부에선 유일한 적통자인 게 사실이다.
진영 내부에서 이념을 제쳐두고 이 의원을 밀어준다면 경선에서 대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일단은 '달라진 이광재'를 대중에 알려 낮은 대권 지지율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