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브람스', 악곡 선정 효과적이나 캐릭터 입체성은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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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초연 창작오페라 '브람스' 리뷰
한국오페라 창작의 역사에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관객에게도 사랑받은 작품은 많지 않다.
인기작이 워낙 드물다 보니 한국오페라를 창작하는 작곡가와 제작자들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젊은 작곡가들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페라 장르의 틀을 깨는 새로운 발상으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다.
현대 오페라의 형식 실험은 오페라의 고향인 유럽에서도 오래전부터 익숙한 일이다.
아예 '오페라'라는 용어 자체를 없애고 '음악극'으로 부르자는 견해도 일반화돼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뮤지컬 장르의 문법을 오페라 공연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두드러진다.
그룹 아바(Abba)의 명곡을 스토리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한 뮤지컬 '맘마미아' 같은 작품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주크박스 음악극'이 지난 1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의 막을 올렸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박형식)이 제작한 작곡가 전예은의 '브람스'다.
지난 7일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아이다'로 개막한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브람스, 슈만, 클라라의 가곡, 칸타타, 관현악곡 등을 이 세 사람의 관계와 사랑에 유연하게 엮어 넣은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4회 공연이 일찍부터 전석 매진돼, 현장 구매를 하러 왔다가 발길을 돌린 관객도 꽤 있었다고 한다.
관객들이 이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했다.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해서, 클라라와 슈만 또는 브람스와 클라라의 러브스토리에 관심이 있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TV 드라마를 보고서 등이었다.
그러나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소감은 뚜렷이 갈렸다.
음악가들의 삶을 자세히 알게 돼서, 브람스의 명곡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브람스와 클라라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외에 새로운 것이 없었다는 평도 있었다.
'극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무대, 의상, 발레 등 보여주기에만 주력했을 뿐 드라마는 실종됐다'는 견해를 밝힌 관객도 있었다.
작곡가 전예은과 대본 및 연출을 맡은 한승원은 세 주인공 간의 사랑에 극의 초점을 맞췄다.
우선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이상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시도는 오페라 또는 뮤지컬 장르의 내용적 전통에 충실했다.
나아가 이 세 주인공을 과거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닌 우리 자신 또는 우리 주변의 인물처럼 느끼게 해 관객의 공감을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극의 구성은 효과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세 주인공인 맞이하는 중요한 사건이나 굴곡마다 그에 꼭 어울리는 악곡이 쓰였기 때문이다.
브람스와 클라라 또는 클라라와 슈만의 정신적 유대감도 가곡의 가사나 교향곡에 입힌 가사로 명료하게 전달됐다.
인물들의 편지에 쓰인 구절들을 작곡가가 새로 창작한 곡의 가사에 사용한 것도 바람직했다.
무대 위에서 26명의 클림챔버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여자경은 전예은의 작곡과 편곡에도 관여하며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과거와 현재를 독일어 노래와 한국어 대사로 구분한 연출의 설정도 극의 밀도를 더했다.
브람스 칸타타 '리날도'의 합창, 슈만을 연기한 테너 정의근의 '헌정'과 '오래되고 몹쓸 노래들', 브람스역을 맡은 베이스 박준혁의 '독일 레퀴엠' 제3곡, 클라라역의 소프라노 박지현이 부른 '여인의 사랑과 생애' 중 마지막 곡 등이 특히 극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젊은 브람스역으로 출연한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열정적인 연주, 브람스와 클라라의 도플갱어로 등장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환상으로 위로한 김용걸, 홍정민의 춤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은 관객을 무장해제 시킬 언어적 무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공연된 '김부장의 죽음', '달이 물로 걸어오듯', '춘향탈옥' 등이 보여준 관객의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이 '브람스'에는 단 한 구절도 없었다.
평이한 대사, 소극장식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성악가들의 연기는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보이게 했다.
음악의 감동과 캐릭터의 입체성을 더욱 살릴 수 있는 극적 연결고리와 대사의 깊이가 보완되길 기대한다.
공연은 16일까지.
rosina@chol.com
/연합뉴스
인기작이 워낙 드물다 보니 한국오페라를 창작하는 작곡가와 제작자들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젊은 작곡가들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페라 장르의 틀을 깨는 새로운 발상으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다.
현대 오페라의 형식 실험은 오페라의 고향인 유럽에서도 오래전부터 익숙한 일이다.
아예 '오페라'라는 용어 자체를 없애고 '음악극'으로 부르자는 견해도 일반화돼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뮤지컬 장르의 문법을 오페라 공연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두드러진다.
그룹 아바(Abba)의 명곡을 스토리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한 뮤지컬 '맘마미아' 같은 작품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주크박스 음악극'이 지난 1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의 막을 올렸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박형식)이 제작한 작곡가 전예은의 '브람스'다.
지난 7일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아이다'로 개막한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브람스, 슈만, 클라라의 가곡, 칸타타, 관현악곡 등을 이 세 사람의 관계와 사랑에 유연하게 엮어 넣은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4회 공연이 일찍부터 전석 매진돼, 현장 구매를 하러 왔다가 발길을 돌린 관객도 꽤 있었다고 한다.
관객들이 이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했다.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해서, 클라라와 슈만 또는 브람스와 클라라의 러브스토리에 관심이 있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TV 드라마를 보고서 등이었다.
그러나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소감은 뚜렷이 갈렸다.
음악가들의 삶을 자세히 알게 돼서, 브람스의 명곡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브람스와 클라라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외에 새로운 것이 없었다는 평도 있었다.
'극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무대, 의상, 발레 등 보여주기에만 주력했을 뿐 드라마는 실종됐다'는 견해를 밝힌 관객도 있었다.
작곡가 전예은과 대본 및 연출을 맡은 한승원은 세 주인공 간의 사랑에 극의 초점을 맞췄다.
우선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이상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시도는 오페라 또는 뮤지컬 장르의 내용적 전통에 충실했다.
나아가 이 세 주인공을 과거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닌 우리 자신 또는 우리 주변의 인물처럼 느끼게 해 관객의 공감을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극의 구성은 효과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세 주인공인 맞이하는 중요한 사건이나 굴곡마다 그에 꼭 어울리는 악곡이 쓰였기 때문이다.
브람스와 클라라 또는 클라라와 슈만의 정신적 유대감도 가곡의 가사나 교향곡에 입힌 가사로 명료하게 전달됐다.
인물들의 편지에 쓰인 구절들을 작곡가가 새로 창작한 곡의 가사에 사용한 것도 바람직했다.
무대 위에서 26명의 클림챔버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여자경은 전예은의 작곡과 편곡에도 관여하며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과거와 현재를 독일어 노래와 한국어 대사로 구분한 연출의 설정도 극의 밀도를 더했다.
브람스 칸타타 '리날도'의 합창, 슈만을 연기한 테너 정의근의 '헌정'과 '오래되고 몹쓸 노래들', 브람스역을 맡은 베이스 박준혁의 '독일 레퀴엠' 제3곡, 클라라역의 소프라노 박지현이 부른 '여인의 사랑과 생애' 중 마지막 곡 등이 특히 극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젊은 브람스역으로 출연한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열정적인 연주, 브람스와 클라라의 도플갱어로 등장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환상으로 위로한 김용걸, 홍정민의 춤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은 관객을 무장해제 시킬 언어적 무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공연된 '김부장의 죽음', '달이 물로 걸어오듯', '춘향탈옥' 등이 보여준 관객의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이 '브람스'에는 단 한 구절도 없었다.
평이한 대사, 소극장식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성악가들의 연기는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보이게 했다.
음악의 감동과 캐릭터의 입체성을 더욱 살릴 수 있는 극적 연결고리와 대사의 깊이가 보완되길 기대한다.
공연은 16일까지.
rosina@chol.com
/연합뉴스